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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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시대의 아픔 봉헌하며 화해와 상생 기원

제주 4·3 70주년 기념 전국 청소년·청년 신앙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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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ㆍ3 70주년 전국 청소년ㆍ청년 평화 신앙캠프에서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젊은이들.

▲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영모원. 참가자들이 함께 제주 4ㆍ3을 기억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운데 위령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군ㆍ경 희생자와 오른쪽에는 4ㆍ3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 제주 북촌리에 있는 애기무덤 앞에서 허준혁 신학생 봉사자가 참가자들에게 애기무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애기무덤은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임시 매장한 곳인데 그 상태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무더운 휴가철, 제주에서 여름을 즐기려는 인파를 뚫고 제주 4ㆍ3의 아픔이 서린 희생터 앞에선 젊은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제주도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관광지로만 여겼던 마음이 이내 부끄러워 숙연해졌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 불리지만 그 아름다움 너머에는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처절함과 아픔이 스며 있었다.

제주교구 4ㆍ3 70주년 특별위원회(위원장 문창우 주교)와 제주교구 청소년사목위원회(위원장 김석주 신부)가 제주 4ㆍ3 70주년을 맞아 마련한 전국 청소년ㆍ청년 평화 신앙캠프에서 젊은이들은 아픈 역사를 딛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염원했다.



제주의 아픈 흔적을 찾아서

“사랑의 하느님, 제주 4ㆍ3으로 희생된 무고한 주민들과 더불어 군ㆍ경 토벌대와 무장대의 희생자들도 주님의 자비에 맡겨 드리며, 그 후손들도 용서와 화해 안에 서로를 포용하며 살아가게 하소서.(중략) 평화의 하느님, 부활하신 주님 성령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시어 저희가 쌓아온 증오와 화해와 분단과 대결을 끝내게 하소서.”

14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영모원. 전국 청소년ㆍ청년 평화 신앙캠프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제주 4ㆍ3을 기억하는 기도’를 바친다. 이곳은 문재인 대통령이 70주년 제주 4·3 추념식에서 언급한 화해의 상징으로, 군·경 희생자와 4ㆍ3 희생자를 한 곳에 모신 곳이다. 가운데 위령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군ㆍ경 희생자와 오른쪽에는 4ㆍ3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후손들은 명찰에 부착된 QR코드로 기도문을 내려받아 함께 기도했다.

19개 팀으로 나뉜 젊은이들은 제주교구 청년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30여 곳의 유적지와 희생터를 방문했다. 제주 4ㆍ3 평화공원을 비롯해 제주 4ㆍ3 당시 전소한 리생이 마을, 토벌대의 눈을 피해 모여 살았던 빌레못굴, ‘무명천 할머니’라 불린 고 진아영(마리아) 할머니의 삶 터 등 제주 4ㆍ3의 아픈 흔적을 따라 걸었다. 제주 4ㆍ3에 대한 미국과 UN의 책임 있는 조치를 위한 서명운동에도 동참했다.

제주교구 신학생과 청년들로 이뤄진 봉사자들은 팀별로 답사를 통해 순례 일정을 정했다. 제주 4ㆍ3의 아픔을 젊은이들의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봉사자로 활동한 제주교구 신학생 허준혁(요셉, 4학년)씨는 “제주 4ㆍ3사건은 단순히 제주에서 끝난 역사가 아니라 70년 동안 힘이 센 자에 의해 약자가 항상 피해를 받았던 역사로 이어진다”며 “캠프를 준비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타인의 아픔에 속상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기도하고, 연대하는 마음과 기억의 끈을 놓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캠프에 참가한 강승구(요한 사도, 24, 청주가톨릭대학생연합회)씨는 “제주는 관광지로만 생각했는데 제주 4ㆍ3사건을 이제 알게 돼 마음이 아프다”면서 “지금까지 희생해온 분들에게 감사하며, 시민의 권리로서 투표를 잘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치유와 화해의 여정으로

“1801년, 황사영 백서. 300명 이상의 천주교인들이 무참히 처형되었습니다. 신유박해, 당파 간의 대립과 권력 암투의 희생 제물이 된 순교자들의 피가 얼룩져 있습니다. 원주교구에서 봉헌합니다.”

14일 저녁 제주시 탑동해변공연장, ‘또한 그들의 영혼과 함께’를 주제로 열린 축제시간. 교구 대표 11명과 캄보디아 청년이 이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는 상징물을 봉헌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국가 권력 등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의 사진들을 부활의 십자가 앞에 내려놨다. 광주대교구는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서울대교구는 6월 민주항쟁을, 수원교구는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봉헌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봉헌한 이수미(대구 신암본당, 아기 예수의 데레사, 22)씨는 “조그마한 나라에 이렇게 많은 아픔이 있다는 게 가슴 아팠고, 하느님께 그 영정사진을 들고 가는 마음이었다”며 “취업과 공부라는 현실에 치여 역사의 아픔을 뒤로하며 살았던 점을 반성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앞서 참가자들은 4ㆍ3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찬양과 노래를 통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 4 ㆍ3 당시 피란생활 중 동굴에서 태어난 고옥란(데레사)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고씨는 갓난아기 때 동굴에서 3일 동안 혼자 버려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결혼해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은 사제가 됐다.

캠프에는 캄보디아 바탐방대목구 청년 4명도 초대됐다. 캄보디아 청년 헨리 키 리케(31)씨는 1975년 캄보디아에서 급진 공산주의 정권으로 인한 학살 사건 ‘킬링 필드’를 소개하며 아픔을 나눴다. 리케씨는 “13년간 태국난민촌에서 생활했고, 이제 평화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아 성소의 길로 가려 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축제 무대에 올라 “제주 4ㆍ3은 일본의 식민지체제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탈출의 여정에서 가장 아프고 쓰라린 ‘아리랑 고개’였다”며 “70년 전 내 또래의 젊은이가 이 제주 땅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겪었는지 마음으로나마 함께 걸어보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어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순수하고 예민한 이성, 뜨거운 감성으로 젊은이들이 함께 모이고 생각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축제에서는 수원교구 현정수 신부가 이끄는 가톨릭 찬양 사도단 ‘이노주사’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무대를 빛냈다.

참가자들은 15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제주 4ㆍ3을 비롯한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세계 평화와 세계의 모든 지도자를 위해 기도했다.

문창우 주교는 파견 미사 강론에서 “구시대 유물인 냉전 시대의 병고를 다시는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제주 4·3은 더욱 진실이 규명돼야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진솔한 치유와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교구 청소년 인권동아리와 중문본당 청소년들은 캄보디아 교회에 평화를 위한 연대기금을 전달했다.

글·사진=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제주 4ㆍ3 사건

제주 4ㆍ3 사건(1947.3.1~1954.9.21)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 경찰 및 우익 청년단의 탄압 중지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을 내걸고 일어난 제주도의 무장봉기와 이후 계속된 무력 충돌,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1954년까지 무장 투쟁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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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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