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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로 만난 하느님] (9)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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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사흘째 되는 날,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을 찾았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네 복음사가는 천사가 예수님 부활을 알려 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몇몇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발현하셨다고 알렸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 주제는 네 복음사가 누구도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많은 화가가 그림을 남겼다. 부활의 영광이 신약성경에서 가장 장엄하고 극적인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 무덤에서 나온 승리자 예수님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인 지랄디 굴리엘모(Giraldi Guglielmo)는 페라라의 성 크리스토포로의 카루투시오 수도회를 위해 성가책 장식 제작을 맡았다.

예수님의 부활 장면은 부활(Resurrexi)의 첫 글자 ‘R’ 안에 그렸다. 예수께서 부활할 때 성모 마리아가 기뻐하는 내용을 담은 레지나 첼리(Regina Coeli) 성가다. 성모님은 단 한 순간도 예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쁨도 불꽃같이 타올랐을 것이다. 그림 속 네 명의 천사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레지나 첼리 가사가 적힌 띠를 손에 들고 함께 기뻐한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왼쪽 위),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오른쪽 위),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왼쪽 아래),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알렐루야(오른쪽 아래)”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가 승리의 깃발을 들고 관 위에 간결하고 우아하게 서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당시 르네상스 화가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운 인체 미도 엿보이지만, 사실은 육신의 부활이 더 강조돼 있다. 십자가 위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수난의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부활한 예수님이 환상의 인물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묻히신 분과 같은 분임을 보여 준다. 곧 죽음의 승리를 상징하는 요소다.

예수님의 승리는 붉은 계열 망토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망토 안쪽의 녹색은 영적인 재생을 상징하며 부활의 영광을 드러낸다. 예수님 왼손은 가는 십자 막대와 부활 깃발을 잡고 있고, 오른손은 축복의 동작을 취한 채 하늘을 향해 있다. “주님의 오른손이 드높이 들리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위업을 이루셨다!”(시편 118,16)

부활은 죽음을 이긴 예수님의 승리다. 예수님 왼쪽 뒤로는 멀리 해골산 위에 세 개의 십자가가 보인다. 그 아래 천사는 라틴어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가 적힌 띠를 들고 있고, 띠 끝에는 예수께서 매달리셨던 십자가 나무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에 복종했지만,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으로써 죽음을 영원히 물리친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 발 아래에 있는 경비병 네 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잠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늘어진 경비병들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게 몸을 드러낸 예수님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예수님 뒤로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풍경 속에는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고 모든 피조물이 자유를 얻고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하다. 부활의 빛이 세상을 비춘다. 빛은 경비병들의 마음을 비추고, 그 빛으로 그들 마음에 있던 어둠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은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도록 모든 이에게 비출 것이다.


■ 저승에서 하늘로 이끄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은 어두운 저승에 갇혀 있는 영혼에도 비춘다. 비잔틴 미술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은 도상학적으로 ‘아나스타시스’(anastasis·그리스어로 부활을 뜻함)라고 부른다. 아나스타시스 그림은 서양미술에서처럼 관에서 나와 다시 살아 숨쉬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저승에 내려가 굳게 잠긴 대문을 부숴 열고 아담을 비롯해 갇혀 있던 영혼들을 구해 내는 승리에 찬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은 중세 이탈리아 화단의 거장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1255~1319)는 시에나 대성당의 거대한 제대화 ‘마에스타’(Maesta)의 뒷면 한 패널에 ‘저승으로 내려간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리의 십자가와 부활 깃발을 들고 저승 문을 부수고 들어서고 있다. 사탄을 밟고 선 예수님은 긴 백발과 수염이 난 아담의 손목을 잡고 있다. 그 뒤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모습의 하와가 무릎을 꿇고 있다. 예수께서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손을 내밀어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꺼내신다.

아담과 하와 뒤에는 시편을 통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다윗과 그리스도의 왕적 특징을 예시해 주는 솔로몬 왕도 서 있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시어 우리 죄를 사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기다린 구약 속 인물들과 요한 세례자를 비롯해 그리스도 이전에 살다 죽은 인물들이 줄지어 있다. 구원의 복음은 모든 죽은 대상들에게 선포된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과 아담의 손을 자세히 보면, 아담이 예수님의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아담의 손목을 끌어 올리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 표정에는 역동성과 결단력이 담겨 있으며, 행동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 다시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희생하시고, 다시 살리기 위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가 다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윤인복 교수
(아기 예수의 데레사·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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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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