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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족발만 먹고 가렴”

이경숙(로사리아, 서울소년원 예비신자 교리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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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로사리아, 서울소년원 예비신자 교리교사 )




자, 허리 펴고 반듯하게 앉아 보자. 교리 수업이 시작되면 빼놓지 않고 하게 되는 멘트다. 주춤주춤 다들 자세를 고치는 척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허리는 여전히 예각이다. 마주 보고 있는 친구를 툭툭 건드려 대는 아이, 눈길만 내게 돌리고 손과 발로 옆 친구와 장난 삼매경에 빠진 아이….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나만 바쁘다. 잡담에 장난질에. 질문은 온통 성(性)적인 내용뿐이다. 이렇게 4주쯤 지나면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진다. 눈빛이 살아나는 아이도 생기고 말투도 부드러워진다. 어찌어찌 석 달을 보내고 총 교리와 찰고가 임박하면 총 교리 유인물을 나눠주며 미끼를 던진다.

“1주일 동안 총 교리 내용 예습하고 못 외운 기도문 다 외워오면 내가 한턱 쏘겠다.” 공부할 땐 몸부림치던 아이들 얼굴에 난데없는 생기가 솟아난다.

그때도 그랬다. 세례식을 2주 앞둔 날, 족발을 사 들고 교리실에 들어갔는데 시우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다들 어물쩍이다. 시우는 무당의 아들로 외롭게 자랐다. 그래서 더 공을 들였다. 담당 교도관을 만났다. 곧 세례를 받을텐데 오늘 결석하면 끝이에요. 아이를 만나게 해주세요. 규정상 안 되는 줄 알지만 떼를 썼다. 교도관 입회하에 시우와 마주섰다.

시우야, 무슨 일이니? 선생님, 저 내년에 대학에 가야 해요. 그런데 아이들이랑 있다 보면 자꾸 싸우고 싶어져요. 징계를 받으면 퇴원이 늦어지고, 때를 놓쳐 대학에 못 가게 될까 봐 자청해서 징계 방으로 피신했다고 했다. 너 꼭 세례받고 싶다고 했잖니?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닌가 봐요. 시우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 그럼 세례는 포기하더라도 족발만 먹고 올라오렴. 너 족발 먹고 싶다고 했잖아? 선생님, 저 한 번만 봐주세요. 그래, 봐 줄게. 그러니까 족발만 먹고 올라와. 시우의 절실함이 이겼다. 시우를 놓고 돌아오는데 한 개 층, 그 길이 어찌 그다지도 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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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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