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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0) 17세기 ③ - 정적주의

하느님 은총이 내리기만 기다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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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왼쪽부터 몰리노스, 귀용 부인, 페늘롱.



17세기에 프랑스에서 그리스도교 수덕생활을 극단적으로 실천했던 얀센주의 이단이 출현했다면, 다른 한편으로 신비생활을 극단적으로 실천한 또 다른 이단이 출현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를 통한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이끌려야 신비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을 잘못 이해한 정적주의(Quietism)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몰리노스의 정적주의

스페인 동부, 무니에사(Muniesa) 인근 마을 출신인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 1628~1696)는 1646년 동부 해안에 위치한 발렌시아(Valencia)로 이주해 예수회가 운영하는 성 바오로 대학에서 종교 교육을 받고 1652년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몰리노스는 1662년에 수덕생활을 실천하며 영적 지도를 훈련하는 수도회인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회했으며 1663년에 로마로 이주해 이 학교의 로마 지부에서 1675년까지 활동하면서 영적 지도자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몰리노스가 1675년에 저술한 저서 「영적 안내서(Gua Espiritual)」는 유명해지면서 많은 유럽 언어들로 번역되어 읽혔습니다. 몰리노스는 저서에서 완벽한 관상과 내적 평화의 풍요로운 보물을 얻는 내적 길을 통해 영혼을 해방하고 이끌어주는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즉, 이성을 사용하는 표면적인 기도보다 단순히 하느님을 관상하며 머무는 내면적인 기도를 바칠 때에 우리 내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만 사랑하라는 몰리노스의 주장은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영성 훈련이 하느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의지로 성덕에 나아가는 것으로 비치게 했습니다. 또한, 이성을 이용하는 기도는 참된 기도라고 여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몰리노스의 저서가 교회 승인을 받고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678년과 1681년에 예수회원들이 몰리노스의 저서를 비판하면서 예수회원들과 몰리노스의 사상을 지지하는 정적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1685년에 몰리노스는 교황청 감옥에 갇혔으며, 1687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PP. XI, 재임 1676~1689)는 교황 헌장 「천상의 목자(Coelestis Pastor)」를 발표해 몰리노스의 주장에서 68개 조항을 단죄했습니다. 몰리노스는 교회의 판단에 즉시 승복하고 자신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철회했으며, 물의를 일으킨 윤리적인 죄를 인정하고 여생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몰리노스의 저서에 나오는 단죄된 주장이 불명확하고 실체가 없다고 새롭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 당시 몰리노스의 주장은 프랑스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이단인 정적주의가 출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귀용 부인의 정적주의


프랑스 중북부, 몽타르지(Montargis) 출신인 귀용(Jeanne Marie Bouvier de la Motte Guyon, 1648~1717) 부인은 어린 시절에 병치레가 잦아서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나, 신심이 깊은 부모님 덕분에 경건한 신앙을 지닐 수 있었고 프란치스코 드 살(Franois de Sales, 1567~1622)과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eanne Franoise de Chantal, 1572~1641)의 영향을 받으며 수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664년 16세인 귀용은 아버지의 강요로 38세인 자크 귀용(Jacques Guyon, 1625~1676)과 결혼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668년에 귀용 부인은 회심 사건을 체험하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시작했으며, 친구였던 베네딕토회 수도원 원장 주느비에브 그랑제(Genevive Granger) 수녀가 소개한 교구 사제 자크 베르토(Jacques Bertot, 1620~1681)에게 과거 프랑스 신비 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귀용 부인은 1675년에 내적 시험을 동반한 신비체험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1676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영성생활에 더욱 투신하였고 1680년에 또다시 신비체험에 들었습니다. 결국, 귀용 부인은 1681년에 영적 지도자로 ‘성 바오로의 수도 성직자회(Clerici Regulares Sancti Pauli)’ 소속의 프랑수아 라 콩브(Franois La Combe) 신부를 선택했으며, 1682년에 그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내적 체험을 담은 작품 「영적 급류(Les Torrents Spirituels)」에서 인간이 급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하류까지 떠내려가 물에 떠 있듯이 인간 영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조용히 머물러 있기만 하다면 하느님께서 그 영혼을 돌보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귀용 부인은 1684년에 저술하고 이듬해에 출판한 저서 「기도에 이르는 짧고 매우 쉬운 길(Moyen court et trs-facile de faire Oraison)」에서 내적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는 방법을 언급했습니다. 즉, 완덕은 관상과 사랑의 지속적인 행동으로 구성되고 완덕에 도달한 영혼은 더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도 되며, 이런 영혼은 모든 것에서 무관심해야 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속성을 포함한 구별되는 모든 관념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간 영혼은 내적 기도의 작용마저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온건한 정적주의를 옹호한 페늘롱

귀용 부인은 1688년에 프랑수아 페늘롱(Franois Fnelon, 1651~1715)을 처음 만났습니다. 페늘롱은 1672년에 생 쉴피스(Saint-Sulpice) 신학교에 입학했으며, 1675년에 사제품을 받고 생 쉴피스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했습니다. 이성적이고 사변적인 기도생활을 실천하던 페늘롱은 처음에 귀용 부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다가 점차 귀용 부인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내적 기도생활에 심취했습니다. 1693년에 귀용 부인의 가르침에 정적주의적인 오류가 있다는 혐의가 확산하자, 페늘롱은 모(Meaux)의 교구장 자크 베니뉴 보쉬에(Jacques Bnigne Bossuet, 1627~1704)에게 구명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보쉬에 주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Louis XIV, 재위 1643~1715)의 승인을 받아 1694년에 이씨(Issy)에서 심사위원회를 열어 관상과 순수한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은 귀용 부인의 작품들에 대한 이단 심사를 하고 1695년에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귀용 부인은 판결에 따라 1695~1703년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1695년 캉브레(Cambrai)교구장이 된 페늘롱은 이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씨의 조항들에 관한 해설(Explication des articles d’Issy)」을 발표하고 1697년 「내적 생활에 관한 성인들의 격언 해설(L’Explication des maximes des Saints sur la vie intrieure)」을 저술해 귀용 부인을 옹호했습니다. 보쉬에도 같은 해에 「기도의 정도에 관한 가르침(Instruction sur les Etats d’Oraison)」을 써 페늘롱에게 보내면서 페늘롱의 저서를 문제 삼았습니다.

결국, 페늘롱은 자신의 혐의를 스스로 벗기 위해서 자신의 저서에 대한 검열을 교황청에 요청했습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PP. XII, 재임 1691~1700)는 1699년에 교황 칙서 「다른 기회에(Cum Alias)」를 공포하면서 온건한 정적주의를 옹호했던 페늘롱이 범한 23개의 오류를 단죄했습니다. 따라서 페늘롱은 즉시 자신의 교구민들에게 교황의 결정에 순명한다는 교서를 발표하고 여생을 교구에만 머물렀습니다.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은총만 강조한 신비생활의 극단이었던 정적주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영성생활과 잘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단 판결 이후에 교회 안에서 정적주의는 얀센주의보다 쉽게 제거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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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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