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36) 기도하는 마음 그대로 이웃에게 다가가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가 열심히 묵주 알을 돌리고 있었다. 보기가 참 좋았다. 나도 슬그머니 묵주를 꺼내 들었다. 묵주 알을 잡으니 마음도 평온해졌다. 할머니와 나는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할머니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가만히 보니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할머니 앞에 서 있는 학생의 목도리가 할머니의 눈앞을 스쳤다. 할머니는 급기야 짜증이 났는지 눈앞에서 찰랑거리는 학생의 목도리를 파리 쫓듯 신경질적으로 쳐내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느라 이런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할머니의 오른손에 쥔 묵주 알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할머니가 내리려고 일어섰다. 찌푸린 표정으로 괘씸하다는 듯 학생을 노려보던 순간 할머니는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운전기사는 “할머니요.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버스가 멈추면 내리야지요!”라고 크게 외쳤다. 할머니는 더 큰 목소리로 “뭐 그리 잔소리가 많노!” 하며 버럭 화를 냈다. 분노로 경직된 몸을 뒤뚱거리며 버스를 내리는 할머니의 손에는 속절없이 묵주가 흔들리고 있었다. 씁쓸함이 깊게 밀려왔다.

기도를 열심히 할 수는 있어도 기도하는 마음대로 살기란 참 어렵다. 나만 봐도 그렇다. 밤늦게까지 성체 앞에 앉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하느님의 영이 나를 푸근하게 감싸고 있는 것 같아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하지만 다음날 급박한 상황이 오면 내가 언제 그런 마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속이 좁아진다. 이것저것 따지고 화도 낸다.

가경자 치마띠 신부와 함께 살았던 한 노(老)사제의 강론 말씀이 생각난다. 치마띠 신부님은 말년에 여느 노인과 마찬가지로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말을 했다고 한다. 묵주기도를 할 때에도 신부님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정도로 큰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단다.

“어느 날은 내가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치마띠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 옆자리에 들어와 일을 보면서도 계속 기도하는 겁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어요. ‘아, 화장실이야말로 참으로 기도하기 좋은 장소구나!’라고.” 마지막에 힘주어 남긴 노사제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줬다. “그런데 치마띠 신부는 단지 기도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그 마음으로 일상을 살았던 거룩한 성인이었어요. 묵주는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묵주는 내 몸의 일부여야 해요. 더 중요한 것은 묵주기도가 그대로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묵주기도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나의 어머니도 생전에 언제 어디서나 늘 손에 묵주가 쥐여 있었다. 모든 인생고를 묵주기도로 녹이고, 든든한 영적인 힘을 얻어냈던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당신의 자식을 하나로 모아 주님께 봉헌하는 위대한 연결고리였다. 그리고 그 기도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희생하며 우리를 품어주었다.

힘이 없고 아프고 힘들 때에도 묵주기도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구원적 강생으로 들어갈 수 있다. 노인이 되어 기억력을 잃어도 할 수 있는 기도가 묵주기도일 것이다. 젊었을 때 묵주를 손에 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한 손에는 묵주를, 한 손에는 분노를 쥔 그 할머니가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입과 손만 분주하고 마음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기도가 그대로 내 삶이 되고 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기도하는 마음 그대로 가족과 이웃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성찰하기

기도 후에는 예쁜 그릇에

물을 가득 이고 갈 때처럼

조심해서 걸으세요.

누구를 만나야 할 때

그 마음 그대로 그에게로 향하세요.

기도의 소중한 물이 엎질러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10-1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2티모 1장 7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