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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0) 현재만이 살아 있는 순간임을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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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수녀의 언니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특별한 지병이 없었는데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했다. 다음 날을 생각하며 들었던 잠이 영원한 죽음의 길로 바뀌었으니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장례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의 경치가 유난히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발아래 떨어진 휘황한 색색의 나뭇잎들이 너무 성급히 떨어진 것 같아 애처로웠다. 삶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던 탓일 게다.

성당에 들어서자 예상했던 대로 가족들의 비탄이 온몸으로 전달됐다. 억지로 꾹꾹 참는 듯한 흐느낌의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가득 메우자 가슴이 저렸다. 눈물 훌쩍이는 소리가 파도를 타듯 여기저기 번져갔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고인의 막내딸은 몸도 가누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 소리를 죽이며 울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어깨만 다독여주었을 뿐.

누군가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죽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아프지 않고 어느 날 잠자듯 그렇게 가기를 많은 사람은 원할 것이라고. 죽음 같은 잠. 다시 육신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니까. 그런데 남은 자의 비통함은 어떻게 하지? 자녀들의 그 흐느낌 속에 ‘사랑한다고 말도 제대로 못했어’, ‘함께 여행 가자고 해놓고’, ‘화만 내고 미안하단 말도 못했다고요’라는 아우성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나의 어머니는 5개월 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울고 있는 나에게 사촌 언니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말이야. 나의 엄마가 일주일 아니 하루라도 앓다가 가셨다면 여한이 없었을 거야.” 큰어머니는 식사까지 잘하고 잠을 주무시다가 영원히 떠났다. 그러니까 딸은 ‘사랑했었다’, ‘고마웠다’, ‘잘 가시라’라는 말조차 하지 못한 게 원통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 5개월 동안 가슴 저리며 엄마를 떠나보낸 나는 여한이 없었을까? 아니다. 사촌 언니보다 오늘 떠나보낸 고인의 딸들보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5년, 10년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가더라도 원통함과 후회는 같을 것이다. ‘이별’은 원래 그런 것일까.

혹시 나는 죽음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엄마가 진짜 죽을 것이라는 걸 절실하게 믿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일만큼은 살아 있으리라.’ 그렇게 희망했었다. 현재만이 살아 있는 순간이라는 걸 믿지 못했다.

고대 인도의 어느 왕 형제 이야기가 있다. 왕의 동생이 형의 권력을 믿고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자 왕이 반역을 유도해 동생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리고 죽기 전 7일 동안 왕의 모든 권한을 줄 테니 맘껏 즐기라고 한다. 그 후 왕이 동생에게 맘껏 즐겼느냐고 묻자, ‘죽을 것을 알면서 어떻게 즐길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우리는 7일 후든 70년 후든 반드시 죽는다. 동생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단지 진짜 죽음을 믿지 못했을 뿐이다. 진실로 죽음을 믿게 되니 더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빠질 수 없었다.

죽음을 진짜로 믿는다는 것은 현재만이 살아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매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깨어 사는 것이며 죽음은 영원으로 가는 축복의 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진실로 죽음을 믿을 수만 있다면 나에게 엄청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소소한 모든 게 선물처럼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다. 죽음을 믿는 순간부터 삶의 의미가 뜨겁게 살아나고 매 순간 새롭게 살아가도록 깨우침을 주리라.



현재만이 살아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성찰하기

1 삶은 오로지 ‘지금’이며 지금만이 사랑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2 죽음을 믿으면 ‘지금’을 의미 있게 사는 길이 보여요.

3 가끔 이렇게 기도해요. “삶의 스승인 죽음을 믿습니다.”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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