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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7주일 -얄미운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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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택 신부



“예수님이요? 그분, 얄미운 분이에요. 그분을 몰랐더라면 대충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텐데. 그분을 알아 피곤하고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때로는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분의 계명은 부담스럽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괴로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분노와 미움이 치밀어오르는 그 원수를 과연 내가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진정 지킬 수 있는 것인가요?

용서…. 그것은 영원한 숙제인지 모릅니다. 용서했다 싶었는데 어느새 과거의 기억과 상처가 되살아나 나를 괴롭힙니다. 원수 사랑은 고사하고 용서조차, 결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사랑과 용서에 있어서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괴롭고 불편한 마음을 아시면서도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인격을 닮아 더 온유하고 겸손해지기를, 우리의 인격이 너그러우며 더욱 넓고 깊어지기를, 그리하여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척하는’ 사람보다는 ‘솔직한’ 사람,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무감으로 맹목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척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를 통한 전적인 변화이며, 그것은 용기를 갖고 걸어가야만 하는 긴 여정입니다.

지금 당장 용서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상처 입기 쉬운, 나약한 존재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성인 성녀가 바로 거기서 출발하였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길을 걷는 것, 찾고 싸우는 길 위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이 버겁고 힘겹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시련 속에서도 견디고 버티어 낸다면, 우리는 분명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맛 좋고 향기 진한 포도주처럼 더 깊이 무르익고 변화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분노와 원한과 같은 감정은 우리의 사랑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나아가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자유로 초대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버겁고 힘겨운 족쇄나 짐이 아니라, 은총과 자유의 세계로의 초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하느님 나라로의 초대입니다. 그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되어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나약한 본성과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갈 때, 신앙 안에서 우리 자신과의 싸움을, 악과 죽음과의 싸움을 계속해서 해나갈 때 우리는 분명 나날이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싸우는 당신이 바로 주님의 제자입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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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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