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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53)‘잘 안다’는 생각, 우리 눈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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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 고향 본당에서 강론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얼마나 떨리던지. 1000여 명이 있는 큰 성당에서도 떨리지 않았는데” 하며 부끄럽게 웃어 보이던 G 신부. 그러면서 그는 그저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면 되는데 더 잘하려다 강론을 망쳤다고 한탄했다. 자신의 어릴 적 성장 과정을 지켜본 고향 사람들 앞에서 새롭게 변한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수녀원을 다니면서 강의하지만 가장 부담되는 대상은 바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수녀들이다.

대부분 우리는 매일 새로운 상황을 만나 도전하고 노력하면서 더 나은 나로 변화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새로움을 만날 수가 없다. 예수님도 고향에서는 복음 선포에 실패하셨다. 고향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목수의 아들이고 가족도 우리와 함께 사는데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이 나올 리가 없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 너 잘 알아’라는 믿음이 진짜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낡은 편견 앞에서 그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코칭의 대가인 루 타이스(Lou Tiuce)는 청중들에게 각자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문자반을 보지 않고 그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이 문자반을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이를 두고 뇌과학자는 ‘뇌는 안다고 생각한 순간, 더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일 보는 익숙한 시계, 이미 안다고 생각하기에 문자반의 세밀한 정보가 다시는 입력되지 않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지 않으니 고정관념으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향 마을이나 수도원, 그리고 직장이나 소속 단체에서 한 인간의 고유한 인격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는 건 그 사람 삶 전체의 극히 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뇌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실패는 생존의 위기와 연결되기에 그럴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랜 친구와도 단 한 순간의 실수로 우정에 금이 간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긴 시간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한순간의 실패가 더 크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후배가 “나도 죽을 만큼 노력한다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지 않아요” 하며 울먹이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실패했던 지난 한순간의 과거와 이별하고 싶어서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하지만 과거의 자기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 갇혀 무척이나 고통받고 있었다. 가끔 나도 후배처럼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이기적이었던 나, 분노했던 나, 미움을 품었던 나, 불평했던 나, 그런 나를 꽉 잡고 놔주지 않으면서 나와 가까워서 잘 안다는 그 누군가를 만날 때 그렇다. 마치 사진기를 들고 피사체에 가까이 접근해 클로즈업하면 일부만 확대되어 보이듯, 보고 싶은 부분만 더 크게 본다. 참 편하다. 잘 보이니까. 더는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까.

볼 때 안 보이는 것도 보고 안다고 생각할 때 모르는 것도 생각해야 하는데….



성찰하기

1. 안다고 생각할 때, 뇌는 다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2. 안다고 생각할 때, 클로즈업하여 보니 다른 것을 볼 수가 없어요.

3. 안다고 생각할 때, 몸 안 세포가 1초 만에 수천만 개씩 죽고 태어나듯, 마음과 생각도 하루에 수천 번씩 죽고 태어난다는 걸 기억해야겠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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