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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복음] 부활 제6주일 -사랑받는 아들로 초대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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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택 신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종종 감당하기 힘든 계명으로 들립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과연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심으로써 당신 제자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고역과 같은 짐을 무겁게 지우려 하신 것일까요?

최후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분이 사랑하신 방법은 어떤 것이었나요? 그것은 친구로 불러주는 사랑,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 뽑아 세워주는 사랑, 친구의 바람에 귀 기울이고 아버지께 청하는 사랑입니다.(요한 15,13-16 참조)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랑법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법이란 것을 종종 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아버지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저 하늘 위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방관하신 분이 아니라, 아들과 깊은 일치 속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 심지어 가장 소중한 당신 아드님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실 때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마디마디에서 아버지와 나누시는 사랑의 친밀함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주시면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순히 의무로 지켜야 할 계명을 부과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아버지와 나누는 사랑의 친밀함으로 초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기쁨을 경험하도록,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를 얻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기대한, 커가는 아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아이가 힘겨워하고 아파할 때 누구보다 더 깊이 아파하고, 기뻐할 때 더없이 기뻐하는, 아이가 자신의 길을 잘 걷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그럴진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얼마나 더 크고 깊고 애틋할까요?

신앙은 힘겨운 삶에 부과된 짐이나 고역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녀로 불러주시는 음성을 듣는 것이며, 자신을 그분의 자녀로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지 깨닫고 그 품위에 맞갖은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종종 잊고 살지만, 우리의 삶은 온통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마음이 옹졸하고 고집이 세서, 그 사랑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웅크리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결국 주님의 그 사랑이, 그 오랜 기다림이 우리의 존재를 열게 하며, 기쁨과 평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향한 열망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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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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