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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성지 신부, 일본 성지순례를 가다

김성태 신부(대전교구 솔뫼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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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태 신부



떠들썩한 시국 때문일까. 손에 이끌린 가방의 무게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렇게 도착한 일본 나가사키에는 늦은 장마가 끝나간다. 하늘도 우리 마음을 안다는 듯이 축축하게 젖은 대지 위로 먹구름이 반, 뭉게구름이 절반씩이다. 눅눅한 이국의 계절 속을 내달려 우리는 히라도 타비라성당에 다다랐다. 소박해서 더 매력적인 성당은 젖은 대지와도 잘 어울려 짓궂은 날씨마저 아름답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중년 부인은 우리말을 이만큼만 할 줄 알았다. 이어 통역사의 입을 빌려 성당에 얽힌 얘기를 자신의 역사처럼 쏟아내었다. 꾼은 꾼을 알아본다고, 10년 넘게 성지 밥을 먹은 나는 이곳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설명을 마친 부인이 “미사를 드리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손등으로 땀을 연신 훔쳐가며 예정에 없는 미사를 정갈하게 준비해 주었다. ‘천주, 아니 계신 곳 없다’더니 이국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가 낯설지 않다.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데 부인이 뛰어왔다. 오늘은 축일이라 초를 두 개 올렸어야 했는데 하나만 올려 “쓰미마셍”(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이해를 구하는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괜찮아요. 당신의 배려와 친절이 감동일 따름이어요. 우리 성지에 오시면 제가 크게 보답할게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통해…” 나는 이 모든 말을 그냥 과한 미소 한 번으로 끝내버렸다.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축복하는 부인이 멀리 보였다. 생뚱맞게도 몇 해 전에 선종하신 스승 신부님의 말씀이 겹쳤다. “독일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독일 사람과 화해할 수 있다.” 전쟁의 피해자인 프랑스 신부님이 어린 시절 자신의 스승께 들었다는 가르침이다.

나도 가슴에서 우러나온 나의 언어로 감사와 축복을 건네고 싶었다. 그렇게 먼저 화해하고 싶었다. 아쉽게 다음 여정을 향해 가는 하늘에 숨었던 해가 반짝 드러났다. 내 마음의 무게를 하늘이 먼저 알고 있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 전담 김성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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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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