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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0)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복음 말씀 듣더니 신 벗고 지팡이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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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말씀 듣더니 신 벗고 지팡이 던져




기도 안에서 교회와 이웃에 봉사하며 겸손과 인내로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던 프란치스코는, 어느 날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체험한다. 그 체험에 대해 그는 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일상의 전례 속에서 계시를 듣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계시였으며, 그것은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계시’라고 하면 뭔가 신비스러운, 이 세상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특별한 하느님의 메시지 전달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의 주요 전기들 속에는 이 유언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가 미사 중에 사제를 통해 선포되는 복음 말씀을 들은 사건이다.

보나벤투라의 「대전기」에 따르면 그는 ‘포르치운쿨라’라고 불리는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수리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사도의 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미사 중에 사제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복음 말씀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마태 10,9-10)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가려져 있던 모든 장막이 걷히는 것을 느끼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은 내 진심으로 갈망하던 바이다”라고 외치며 그 자리에서 신을 벗고 지팡이를 던져버린다.



성경, 프란치스코 삶의 길잡이

프란치스코에게 성경은 가장 구체적인 하느님의 목소리였다. 따라서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법칙이자 길잡이였으며, 세상의 모든 관습이나 법 위에 있는 최고의 규범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회개 초기에 형제들이 찾아와 첫 공동체가 이뤄졌을 때, 공동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 규칙 외에 다른 별도의 규정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규정들이 복음을 통해서 자신과 형제들을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생생함을 방해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였던 만큼 말씀과도 완전한 일치를 바랐고, 자기 자신과 공동체 역시 오로지 복음을 통해서 인도되기를 원했다.

그는 특히 전례를 통해서 선포되는 성경 말씀에 성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만나고 대화한다.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된 그분의 몸과 피와 이름과 말씀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육체적으로 모실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성직자들이 말하고 전하고 거행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말씀과 피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확신하고 있습니다.”



양피지 속 하느님

성자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 자신을 감추시듯, 그분의 말씀 또한 비인격적인 책이나 양피지 속에 자신을 감추고 우리에게 오신다. 때때로 그것은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부적절한 곳에 던져져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 모든 부적절한 조건들을 지극한 가난과 겸손으로 수용하시면서 인간과의 친교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말씀의 겸손 앞에 감탄하며 형제들에게 거기에 합당한 태도로 응답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형제에게 훈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합니다. 어디서든지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표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거나 혹 불경스럽게 흩어져 있으면 주워 모아서 보관하여 그 말씀을 하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공경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많은 것들이 거룩하게 되며, 그리스도 말씀의 힘으로 제단의 성사가 이룩되기 때문입니다.”

제단의 성사는 말씀의 힘으로 이룩된다. 물론 미사 안에서 성체성사가 가지는 독보적 가치와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먼저 말씀으로 축성되지 않으면 주님의 몸이 현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성체성사만큼이나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뚜렷이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현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었기에 그분과의 일치는 곧 말씀과의 일치를 의미하였다.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은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이고, 당신이 읽을 때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라는 성 예로니모의 말처럼,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과 만나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서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모범에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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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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