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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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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4) 식탁에서(루카 14,1-24)

예수님의 ‘밥상머리 교육’… 신앙인 삶의 자세 담아

▲ 두초 디 부오닌세냐 작 '맹인을 치료하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드시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자리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병자를 고치시며 안식일의 참뜻을 강조하신 일, 끝자리에 앉고 가난한 이를 초대하라는 가르침, 그리고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시다(14,1-6)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느 집에 초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그중에는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도 있었겠지요. 루카는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14,2)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지켜본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호기심에서 지켜볼 수 있지만, 감시하거나 경계하고자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 곧 몸이 붓는 병을 앓는 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수종병자의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시비를 걸려고 지켜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의도가 들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후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이 첫 번째 이야기는 루카가 이미 두어 차례 소개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일(6,7-9; 13,14-16)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곧 안식일을 지키는 참된 의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안식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착한 일을 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요?



끝자리에 앉아라(14,7-11)

초대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받으면 윗자리에 앉지 말고 오히려 끝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괜히 윗자리에 앉았다고 다른 자리로 내려앉으라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끝자리에 앉았다가 주인한테 윗자리로 올라앉으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비유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괜히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었다가 다른 이들에 의해 높여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단지 처세에 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가난한 이를 초대하여라(14,12-14)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그 지도자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할 때에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이지요. 부유한 이들은 답례하겠지만 이런 이들은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핵심은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4,14)라는 마지막 말씀에 있습니다. 현세에서 보상을 받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으로 보상을 얻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혼인 잔치의 비유(14,15-24)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혼인 잔치에 관한 비유입니다. 함께 식탁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는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부합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을 보러 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겨릿 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봐야 해서 가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양해도 구하지 않습니다.

종이 돌아와서 그대로 전하자 화가 난 주인은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오너라."(14,21) 하고 분부합니다. 그들이 왔는데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다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오게 해서 집이 가득 차게 하라고 종에게 분부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14,24)

복음서들에서 하늘나라 또는 하느님 나라는 혼인 잔치에 자주 비유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네 번째 혼인 잔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좀 더 구체적으로 누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해 음식을 들게 될 것인지에 관한 비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해 성경학자들의 해석은 대략 이렇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이들,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의롭다고 하는 이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를 받고서도 여러 이유를 대며 거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됐지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고을의 한길 골목의 가난한 이, 장애인, 눈먼 이, 다리 저는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버림받았다고 여겨지는 비천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버림받은 이들, 죄인으로 천시되던 이들이지만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아직도 자리가 남아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데려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선택됐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지 못하지만, 죄인으로 천시받던 이들, 그리고 이방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에 관한 이 비유를 통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부한 이스라엘을 초대를 받고도 거부한 이들에 비기면서 반대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인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이들, 그리고 이방인들이 구원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 관한 이 네 번째 이야기와 앞의 다른 세 이야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혼인 잔치의 비유가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이들과 이방인들이 구원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앞의 세 이야기는 그 구원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이들이 해야 할 처신과 관련된다는 것이 저의 조심스러운 생각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곧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일화는 안식일 규정에 얽매이기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그 뜻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곧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이야기는 구원의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대접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오히려 끝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쳐내시고 겸손한 이를 들어올리십니다.(루카 1,51-52 참조) 그리고 세 번째, 아무것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답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선이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18.03.07 등록]
가톨릭인터넷 Goodnews에 오신 모든 분들께 축복이 함께 하시길..
오늘의 복음말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성인
 니체타(Nicetas)
 바울리노(Paulinus)
 알바노(Alban)
 에베르하르도(Eberhard)
 요한(John)
 요한(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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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인노첸시오 5세(Innocent V)
성녀  콘소르시아(Consortia)
 토마스 모어(Thomas More)
 플라비오 클레멘스(Flavius C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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