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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성 레옹 이냐스 망젱 신부

중국서 선교하다 박해의 총탄에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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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교 중 순교한 성 레옹 이냐스 망젱 신부.

▲ 중국 120위 성인화.



청나라 말기인 1899년 11월 중국 산동과 화북 지방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서양인들과 그리스도교를 몰아내는 의화단(義和團) 운동이 벌어진다. 1901년 9월까지 불꽃처럼 퍼진 이 의화단 운동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고 교회는 파괴됐다. 이때 순교한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2000년 10월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중 한 명이 예수회 회원인 레옹 이냐스 망젱(Leon Ignace Manjin)이다.

망젱 성인은 1857년 7월 30일 프랑스 동부 모젤(Moselle) 강가에 있는 작은 도시인 베르니(Vern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판사였다. 그는 티옹빌(Thionville)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메츠(Mets)에 있는 성 클레망(St. Clment)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 시기 그의 성소가 싹트기 시작했다. 아미앵(Amiens) 라 프로비당스(La Providence)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는 강인하고 건강할 뿐만 아니라 단호하며 긍정적인 젊은이였다.

망젱은 1875년 11월 5일 아미앵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에 입회했다. 그는 6년 후 리에주(Lige)에 있는 성 세르바누스(St. Servan) 고등학교에 파견돼 1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자 가운데 한 명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고, 활발한 성격에 애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다재다능한 말솜씨를 가졌고 교실 밖에서조차 듣기 싫은 소리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아주 사랑했다. 그는 교사직에 너무 열중해 어린 시절 선교에 대해 가졌던 열망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관구장 그랑디디에(Grandidier) 신부는 1882년 6월 망젱을 중국 선교사로 파견했다. 망젱은 이 명령에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빨리 평정을 되찾고 장상의 지시에 순명했다. 망젱은 동료 신부에게 “나는 내가 바라던 것을 받았다. 지금 나는 순교의 선물을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그해 9월 17일 망젱은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에서 배를 타고 극동 지역으로 항해해 6주 후 중국 천진(天津)에 도착했다. 그는 중국에서 4년을 더 공부한 후에 1886년 7월 31일 하북(河北)성 헌현(獻縣) 장가장(張家莊)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후 그는 고성(故城)에서 첫 사목을 시작했다. 망젱은 이곳에서 섬세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조용하고 끈기있는 성격을 보여줬다. 재능있는 선교사로서 그는 훌륭한 판단력과 이성,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제3수련을 받은 후 그는 1890년 하간부(河間府)의 책임자로 선교했다. 하간부 지역에는 9명의 사제가 240개의 성당을 다니며 신자 2만여 명을 사목했다. 7년 후, 그는 하북성 경주(景州)로 전임됐다. 그곳에서 고성(古城)과 주가하(朱家河)를 관할했다.

1899년 11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을 때 교회에 대한 박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바로 경주현 주가하였다. 주가하는 북경에서 약 200여 ㎞ 떨어진 곳으로 주가의 집성촌이었다. 40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은 신자들이었다.

의화단의 박해가 심해지자 경주, 동광, 오교 등 인근 지역 신자 3000여 명이 폴 덴(St. Paul Denn 1847~1900) 신부를 따라 지대가 험한 주가하로 피난을 왔다. 이곳에 숨어든 신자들과 주가하 교우촌 주민들은 참호를 파고 무장을 했다. 망젱 신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성체를 영해 주고, 부녀자들을 성당으로 피신시켰다.

1900년 7월 17일 청나라 관군과 의화단 1만여 명이 주가하 교우촌에 쳐들어왔다. 망젱 신부와 신자들은 3일을 버티었으나 무기가 다 떨어져 결국 패하고 만다. 3일간의 전투로 신자 1000여 명이 전사했다. 젊은 여성 신자 58명은 신앙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졌다.

의화단은 성당 안에 피신해 있는 동정녀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을 보고 성당 갈대 지붕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불을 피해 창문으로 뛰쳐나오는 신자들을 무차별하게 사격했다. 망젱 신부는 동요하는 신자들에게 “잠깐의 고통을 참으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됩니다”라고 큰 소리로 격려했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에 총알이 박혔다. 망젱 신부는 제대 앞으로 기어갔고 긴 시간 동안 피를 흘리다 순교했다. 이렇게 성당에서 불에 타거나 총에 맞아 순교한 신자가 2000여 명에 달했다.

이처럼 1900년 7월 20일 단 하루에 주가하 교우촌에서는 망젱 신부와 동료 폴 덴 신부를 비롯한 3000여 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주가하는 완전히 초토화돼 죽은 자의 마을로 변했다.

레옹 이냐스 망젱 신부는 다른 세 명의 예수회원 순교자들과 함께 1955년 4월 17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2000년 10월 1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다른 119명의 중국의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됐다.




여명모 신부(예수회, 대만 구청예수성심당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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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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