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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도시] (31) 아쏘스

바오로, 선교 열정에 걸어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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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쏘스 항구 전경.

아쏘스는 지금은 터키의 작은 항구이지만 예전에는 트로아스 남쪽의 항구 도시다. 일반적인 성지 순례 여행 일정에는 대부분 아쏘스가 빠져 있다. 워낙 외진 곳에 있고 산을 타고 가기에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그러나 아쏘스는 아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항구 도시다. 이 도시는 예로부터 해안의 요지와 연결돼 적의 공격으로부터 쉽게 함락될 수 없는 천연 요새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아쏘스 항구에서 맞은편에 있는 미틸레네 섬이 보이고 도시는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도성으로 가려면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게 돼 지형 자체가 자연적 방어막이 됐다. 아쏘스 성채는 암석으로 된 235m 높이의 언덕에 있고 방어 시설이 32㎞에 달하며 20여m 높이의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이 요새 형태는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졌다.



고고학적 유물 계속 출토

요새 안에는 아테나 신전과 군인들이 훈련을 받는 훈련터, 광장, 극장, 방파제 등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산 정상에 세워진 ‘아테나’ 신전은 이 도시의 중요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530년쯤에 레보스인들이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에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 그 옛날의 영화를 잘 보여 준다. 이 신전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에게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경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쏘스는 발전을 거듭하다 페르시아에 점령되면서 그 영광도 끝을 맺는다. 기원전 334~24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241년에는 베르가모의 식민지가 됐다.

이 도시는 주변이 주로 농경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쏘스 항구에서 수출하던 좋은 품질의 밀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쏘스에서는 지금도 고고학적 탐사가 계속돼 여러 유물을 찾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도리아식 신전을 비롯해 조각품, 시장, 체육관, 목욕탕, 극장 등이 있다. 또 아쏘스는 철학과도 연관이 깊은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아쏘스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간 이곳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첫 학파를 세운 뒤, 기원전 344년 마케도니아의 필립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부름을 받고 떠난다.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가서 밀레토스로

성경에서 아쏘스는 사도 바오로가 도보로 방문한 도시다. 사도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아쏘스까지 걸어가 아쏘스에서 배를 타고 밀레토스 항구에 도착했다(사도 20,13-16). 트로아스에서 사도 바오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동료들을 배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아쏘스로 갔다.

“우리는 먼저 배를 타고 아쏘스로 떠났다. 거기에서 바오로를 배에 태울 참이었다. 바오로가 거기까지 육로로 가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우리는 아쏘스에서 바오로를 만나 그를 배에 태우고 미틸레네로 갔다”(사도 20,13-14).

그런데 사도 바오로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어떤 이유로 힘들게 걸어서 이곳까지 오고자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선교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아쏘스로 오는 도중에 교회 공동체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목 방문을 할 교회나 개인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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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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