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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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414. 혼란스러운 마음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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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저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마음이 심하게 혼란해지고 기도 드리는 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기도한다는 것이 왠지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당에 가게 되질 않습니다. 성당은 마음이 정리된 후 가야 할 곳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교리를 공부하면서 의문이 생기는 것도 고민입니다. 대모님은 아무 의심 없이 믿으라고 하시는데 전 의심이 많아 견진성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고민입니다.



답 : 많은 교우분이 자매님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선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주치는 혼란스러움을 말씀드리지요. 살다 보면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머릿속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때로는 사람이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한 정서의 원인은 무엇인가. 믿음이 약해서 생긴 것인가. 아니면 악의 유혹인가. 심리 치료에서는 이것을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라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기 위한 과정이란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놓이면 내가 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겠지만 이런 두려움은 당연합니다. 단지 이러한 생각에 발목을 잡히지는 말아야 합니다.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새 고통스럽게 기도를 하신 주님처럼 십자가와 성모님 앞에서 내 두려움을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 안의 온갖 감정의 불편함을 고백하다 보면 심리적 안정감이 오고 회복도 빨라질 것입니다.

교리에 의문을 갖는 것도 당연합니다. 간혹 신앙인이 의심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분들이 계신데, 사람의 마음은 그리 성숙하지도 강하지도 않기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평생을 주님께 헌신하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당신 삶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의 갈등이었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더하겠지요.

의문을 갖는 것은 성숙한 신앙을 위한 필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입증한 분이 아우구스티노 주교 성인이십니다. 성인께서는 마니교에 빠졌다가 끊임없는 의문과 물음을 통해 마니교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전 생애는 묻고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각하는 신앙인이셨습니다. 물론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삶을 믿는 신앙생활은 이성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영적인 삶을 강조하고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심리적 균형을 깨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믿음에 제동을 거는 이성이 필요하고 의문과 물음이 필요합니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작은 유머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떤 신부가 밤새 기도하다 마음에 믿음이 북받쳐 들떴습니다. 신부는 신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주님께서는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면서 강한 믿음을 가지라고 열띤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신부님, 산은 말고 성당 마당의 저 돌덩어리를 믿음으로 옮겨 주시면 저희도 믿음을 갖겠습니다”고 했지요. 신부는 바로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돌만 옮겨 주신다면 제가 무엇이든 다하겠습니다.”

절절한 기도를 하고 눈을 떴는데 돌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실망하고 돌아가는 신자들을 보면서 망연자실해진 신부가 성당 안에 들어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산도 아니고 작은 돌덩어리 하나 옮겨 달라는데 그것 하나 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신부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시면서 “돌은 옮겨서 뭐하게? 넌 왜 쓸데없는 데 믿음을 쓰려고 하느냐? 이놈아! 그리고 내가 네 부하냐? 너는 매일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기도할 때면 늘 나를 종 부리듯 하더라, 괘씸한 놈!”이라고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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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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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무 24장 14절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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