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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84,끝> 사회교리- 그리스도인의 삶(3)

사랑은 ''사회,정치적 애덕'' 특징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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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서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위해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이라는 근본 가치들이 실현돼야 하며, 사람들이 내린 결정들 안에 이 가치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는지 보여주고자 교회는 현세 질서에 개입한다는 것을 이야기했다(「간추린 사회교리」 197항).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내린 경제 분야의 결정이 수많은 사람을 빈곤으로 내몬다면, 이는 자유라는 근본 가치가 배척되고 있다고 교회는 밝혀야 한다. 정치 분야의 결정이 시민이 갖는 기본적 권리들(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는 정의라는 근본 가치를 배척하는 것이라고 교회는 말해야 한다. 대중매체 분야에서 윤리적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지 않아서, 수많은 시민의 판단과 참여의 왜곡을 가져온다면, 이는 진리라는 근본 가치를 배척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인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이 현세 질서에 수용되도록 교회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교회가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은 그 소명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이웃 사랑에만 머물지 말아야

 오늘은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해 살펴봐야겠다. 사실 사랑처럼 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생활에서 사랑은 마치 공기와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을 `친밀한 육체적 관계`로 국한하거나 단순히 `타인을 위한 행동의 주관적 측면`에 한정하려 한다.

 육체적 관계로서의 사랑은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해석하지 않아도,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는 것이니 말이다. 말 그대로 자연일 것이다. 타인을 위한 행동의 주관적 측면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 있다. 좋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싫은 사람에게는 미움이 있다. 물론 타인을 향한 마음이 없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흔히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이기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사랑의 주관적 측면만 살펴보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정치적 사회적 애덕`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현대세계의 인간관계 때문이다. 사실 농경 목축사회에서 이웃을 향한 주관적 사랑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경제생활도 철저하게 계절의 변화와 땅과 물과 같은 자연에 의존했다.

 자연재해 때문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자. 식량을 비축한 사람이 자기네 가족만 살겠다고 이웃의 배고픔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런 경우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인을 위한 행동으로서 주관적 측면의 사랑은 당연했을 것이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떠돌아다니고, 병들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웃을 보고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 초래하는 원인까지 신경 써야

 현대의 도시사회에서 개인이 그 같은 타인을 위한 주관적 측면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가능하더라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가끔 강론 때 교우들에게 묻는다. "도심 한복판에서 노숙하시는 분들을 모셔서 재워드리고 식사를 제공하고 머물게 할 분 계십니까" 하고. 반응은 침묵이거나 가벼운 웃음이다.

 침묵인 이유는 복음 말씀 때문일 것이고, 가벼운 웃음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는군요"하는 뜻일 게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인간관계가 제한된 지역공동체 안에 머물렀던 과거 농경 목축사회와는 달리, 현대 사회는 그 관계망이 바로 사회 정치 공동체 전체 속으로 확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이를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궁핍하고 곤궁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개인 간의 관계라는 단순한 차원과는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08항)고 설명한다. 그래서 교회는 사랑이 `사회적 정치적 애덕`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가르친다.

 사회적 정치적 애덕은 "상황에 따라 사회의 중개를 활용해 이웃의 삶을 개선하고 이웃의 가난을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208항)을 말한다. 사회의 중개는 정책, 제도, 법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정책이 이웃의 삶을 개선할 수도, 떨어뜨릴 수도 있으며, 이웃의 가난을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이 될 수도,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가톨릭교회가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삼는 사랑은 `사회적 정치적 애덕`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불쌍한 사람을 직접 도와주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지만, 사회의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만들어 가난의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고 삶을 개선하려는 행동도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회교리를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해주신 박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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