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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1> 연재를 시작하며

사회교리, 그리스도인 생활의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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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9일 금요일 오후 4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날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였다.
 
 신자들이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사회적으로는 유로 공동체 EU의 통합 헌법을 조인하기 위해 유럽의 각국 정상들이 로마의 캄피돌리오에 모여 통합 헌법에 대한 조인식을 하고 있었다. 인권에 대하여, 사회적 연대와 통합에 대하여 각국 정상들이 아침부터 TV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었을 때, 나 역시 같은 주제어들을 갖고 박사학위 공개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유학생활의 마지막 순간, 박사학위 공개심사가 잡혀 있었던 그날, 나는 아침부터 불안함과 더불어 약간의 흥분감 속에서 공개심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개심사에 지인들을 초대하면서 썼던 초대 글이 지금도 떠오른다.

 "부족하고 형편없는 제가 하느님의 도우심과 교수님들의 자비로우심으로 박사학위 공개심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제 학문 지평에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기도로 격려해 주시고 힘이 되어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란 넓은 바다속에 가녀린 낚싯대를 드리우고 허탕질을 한 지 7년, 결국 마지막 순간에 아주 작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평화신문에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해 연재해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으면서 유학 시기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 것은 과연 내가 삶 속에서 배우고 익힌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신자분들에게 올바르게, 그리고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학위 심사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신자분이 나와 함께 계실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비록 나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신자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있을 것이란 믿음에 감히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사회교리,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

 2004년 「간추린 사회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가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출간되기 전까지 대다수 사람은 교회의 가르침 안에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교도권의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일반 신자들에게 사회교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교리는 노동 문제에 대한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가 1891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

 교회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주어왔으며, 이러한 가르침들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소유하도록 도움을 주어왔다. 사회교리가 우리 신앙인들의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생활의 나침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사회교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리`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사회교리는 어렵고 따분한 것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교리가 이처럼 어렵고 따분하고 추상적일까?

 사회교리는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이기에 결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일 수 없는 가르침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정교분리의 원칙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을 통념적으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국가는 국가의 일을, 교회는 교회의 일을 하도록 요구되면서 교회가 세상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 문제에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이 잘못된 것이란 견해 역시 배척해야 할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교회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 놓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교회의 예언자적인 사명까지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이 세상에 존립할 근거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글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목적은 가톨릭 신앙을 삶의 기준으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쉽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이러한 사회적 가르침의 이해를 바탕으로 신앙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회교리를 행동 안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실천적인 좌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번 여정을 통해 우리 신앙인들 모두가 교회의 실천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익히고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을 갖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황창희 신부는 인천교구 소속으로 1997년 사제품을 받고 교황청 라테라노대학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석사, 교황청 우르바노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진본당 주임을 거쳐 2005년부터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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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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