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3>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 구원 메시지, 인간 역사에 드러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성스런 것과 속된 것 사이에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적으로는 성스러움을 찾는다고 말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물적ㆍ육적 유혹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 존재다. 이처럼 인류가 죄 속에서 살면서도 영원한 멸망의 고통에 빠져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시련 이겨내

 어린 시절 유아세례를 받은 나는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보며 성장했다. 가족 중 맨 처음으로 세례를 받으셨던 어머니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고, 어머니 덕분으로 가족 모두는 가톨릭 신앙에 입문할 수 있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나는 행복한 유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살림이 어려워지게 된 후 가정의 위기가 찾아왔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본당 공동체가 있었기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본당 신부님과 교우들의 정성 어린 기도와 물적 지원은 다시금 아버지를 일어설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안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할 수 있었다.

 신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대화 속에서 아버지는 아직 어린 나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당신의 파란만장한 개인사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는 그야말로 당신의 두 발을 이 땅에 딛게 할 수 있게 했던 원천이자 힘이었다. 전쟁으로 정든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고장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에게는 어떤 배경이나 물질적 지원도 없었고 모든 어려움을 홀로 이겨내야만 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 아버지를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했던 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다. 항상 즐겨 부르시던 "세상의 풍파가 심할지라도 내게는 평화 있네"라는 가톨릭 성가의 가사처럼 아버지는 어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셨다.

 아직 가훈이 없었던 우리 집에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가훈을 적어 액자에 표구해 들어오셨다. 그 액자에는 향주삼덕을 나타내는 신, 망, 애라는 세 글자가 한자로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액자를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거셨다. 그리고 가족에게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은 신망애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 속에서 깨우친 것을 가훈으로 적어 가족에게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믿음, 희망, 사랑임을 확신하셨다. 자신의 개인적 삶 안에서 신망애 삼덕의 중요성을 깨달으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이 세 가지 덕목을 추구하며 세상을 살아가도록 당신의 깨달음을 남겨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믿음과 희망, 사랑

 하느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이 팽배한 오늘날 세상 안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있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을 직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 체험이 자신의 신앙 안에 제대로 녹아 있지 않다면 일상 속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수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다.

 인류의 모든 문화 전통 안에서 느끼는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존재를 직관하도록 이끌어준다. 동시에 인간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며 우리 인간 역사 안에 함께 현존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는 존재다.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모습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 모습은 우리 인류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역사적으로도 놀랍고 예리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 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탈출기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울부짖음을 무시할 수 없는 분이시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탈출 3,7-8).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은 약속된 땅을 선사하심으로써 온전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느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고 계심을 알려준다(「간추린 사회교리」 21항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고유한 방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는 분이시다. 더군다나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가난하고 억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하느님의 구원 메시지는 이제 모든 인류 공동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존재는 그만큼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일에 무관심할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일 것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1-1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3

시편 139장 14절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