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아브, 엠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고대 근동 세계의 ‘집’은 지금과 무척 달랐다. 어떤 형태의 공적 기관도 생겨나기 전을 상상해 보자. 맨 처음에 집이 있었다. 도시가 생겨나기 전에 집은 유일한 기관(institution)이었고, 왕궁과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도 집은 사적인 곳이자 동시에 공적인 장소였다. 그 집을 다스리는 엠(엄마)과 아브(아빠)는 모두 알레프로 시작한다. 오늘은 히브리어 모음도 배워보자.

■ 명예의 호칭, 아빠 히브리어로 ‘아-브’는 아빠를 의미한다. 우리말과 히브리어가 발음이 참 비슷하다. 뒤에서 볼 ‘엄마’와 함께 인간이 맨 처음 내뱉는 매우 원초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아빠’는 본디 혈육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공적인 호칭이기도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임금, 예언자, 스승 등을 아빠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한때 다윗은 사울에게 쫓겼다. 그때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주님의 기름 부음받은 자에게 손을 댈 수 없다며 사울을 살려준다(1사무 24,7). 그때 그는 사울 임금을 “아버지”라 불렀다(1사무 24,12).
예언자도 아빠라고 불렸다. 성경에 따르면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스승의 승천을 목격한 엘리사는 스승을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2열왕 2,12)라고 불렀다. 뒤에 이스라엘의 임금은 엘리사 예언자를 똑같이 불렀다(2열왕 6,21). 이렇게 명예로운 호칭으로 사용될 때는 자주 ‘아-비-’, 곧 ‘나의 아빠’라고 했다.
아빠는 일종의 관직명이기도 했다. 요셉은 헤어진 형제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짐짓 모른 체를 했지만, 결국 감정이 북받쳐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창세 45,4)라고 털어놓았다. 그 장면에서 그는 자신이 결국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아버지”(창세 45,8)가 되었다고 밝힌다. ‘파라오의 아빠’라니? 요셉의 후손이 파라오가 되었나? 아니다. 이 호칭은 파라오에게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하게 조언하고 파라오의 통치를 돕는 사람일 것이다.


■ 하느님을 묘사하는 말 아빠는 이렇게 가장 친근한 사적 호칭이자 동시에 공적이고 명예로운 호칭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거룩하신 아빠’(聖父)로 찬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찍이 모세는 하느님을 아빠로 불렀고(신명 32,6), 이사야 예언자 등도 그렇게 불렀다(이사 64,7). 그 밖에도 하느님을 아빠로 부른 경우가 구약성경에 더러 있다.

특이하게도 하느님을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시편 68,6)로 찬미하기도 했다. 하느님은 모든 백성의 아빠이지만, 특히 가난한 사람의 아빠라는 말이다.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성찰이 이런 호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즐겨 ‘아빠’로 부르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매우 친근하게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이 호칭에는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나에게 친근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가장 보편적으로 만민과 자연을 지배하신다는 성찰이 들어 있다. 하느님 앞에는 공과 사가 따로 없다.

신부(神父)도 아빠다. 영어 등 서양언어로 신부님을 ‘아버지’(father)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호칭의 전승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떼 사이에서 양의 냄새를 풍기는 아빠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좋은 아빠에게는 집과 가족의 냄새가 배기 마련이다.


■ 명예의 호칭 엄마
히브리어로 ‘엠-’은 엄마다. 이 호칭도 역시 사적이고 동시에 공적인 호칭이었다. 고대 근동은 매우 심한 남성 중심의 사회여서, 엄마를 공적 호칭으로 사용한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경우가 다행히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판관 5장)에 실려 전한다.

이스라엘에 임금이 있기 전에, 여성 판관인 드보라는 백성을 지도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노래에서 드보라는 아래처럼 ‘이스라엘의 엄마’로 불린다. 군사적·정치적·종교적 지도자였던 판관 드보라였다. 엄마가 아빠처럼 분명히 공적 호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드보라, 그대가 일어설 때까지 / 그대가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설 때까지”(판관 5,7)

엄마와 아빠를 보았으니, 다음에는 형제와 자매를 보겠다(계속).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07-1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에페 5장 30절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