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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기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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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알파벳의 세 번째 글자는 기멜이다. 우리말의 ‘ㄱ’ 또는 영어의 G에 해당하는 자음이다.


■ 단봉낙타의 혹

짐승마다 특징이 있다. 코끼리는 코가, 황소는 뿔이, 돼지는 코가 상징이다. 낙타는 혹이 인상적인 짐승이다. 원셈어로 기멜은 본디 꺾쇠 모양의 글자였는데(그림1), 낙타의 혹을 표현한 것이다. 원셈어나 페니키아어로 낙타를 가말이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도 그렇게 부른다. 이 글자의 이름 기멜은 가말의 모음만 살짝 바꾼 것이다. 기원전 3000년경 북아프리카에서 최초로 가축화된 낙타는 단봉낙타였다. 이 글자의 이름과 모양을 보면, 인간의 손에 처음 길들여진 단봉낙타가 떠오른다.(다만, 이 글자를 ‘낫’으로 보는 의견도 학계에 존재한다)

낙타 없이 사막과 광야를 가로질러 물자와 인력을 옮길 수 없었다. 낙타는 재산이자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운송수단이었다. 낙타의 영어 이름 camel은 원셈어 가말(gamal)에서 온 것이다. 낙타는 고대근동 세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기에, 대부분의 유럽어에서 낙타의 이름은 이렇게 셈어를 음차한 형태가 되었다.




■ C가 된 기멜

기멜은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대개 원셈어 계통의 언어에서는 방향이 다를 뿐 꺾쇠 모양이 잘 유지되었다. 쐐기문자 알파벳인 우가릿어 기멜도 꺾쇠를 표현한 것 같다. 그리스어의 세 번째 알파벳 감마는 방향만 바꿨을 뿐, 이름도 모양도 셈어를 따른 것이다. 한편 현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기멜은 퍽 갸름한 형태로 발전했다(그림2).
대략 기원전 8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에서 독자적 문명을 꽃피운 에트루리아인의 문자는 라틴어 알파벳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에트루리아인들과 일부 그리스인들은 기멜을 살짝 둥글게 구부린 형태로 사용했고, 결국 이 글자는 라틴어 알파벳 C의 조상이 되었다(그림3). 낙타를 의미하는 원셈어 ‘G’amal이 영어 ‘C’amel이 된 것은 이 글자의 역사를 함축한다.


■ 성경의 가말

낙타, 즉 가말은 성경에 자주 나온다.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을 전하는 창세기 24장에는 가말이 17회나 등장한다. 성경에서 낙타가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이자 내용적으로도 무시 못할 역할을 하기에, ‘낙타의 본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사악의 혼처를 알아보라는 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24,1-9) 가말 열 마리를 데리고 길을 나서(24,10), 아람 나하라임의 성 밖 우물 곁에서(24,11) 맘씨 착한 레베카 아가씨를 찾았다. 그런데 그 종이 레베카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를 어찌 알아보았을까? 그녀는 사람뿐 아니라 가말을 위해서도 물을 길어주었던 것이다(24,12-20).


■ 보상과 충실함

가말은 동사로도 쓰이는데, 다양한 뜻을 지녔다. 그런데 각각의 뜻을 찬찬히 뜯어보면, 낙타를 타고 이동하며 살아야 했던 상인의 삶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지면의 한계상,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즐겨 사용된 두 가지 대표적인 뜻만 알아보자.

가말을 타고 먼 길을 떠나는 상인은 임무를 완수하면 큰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말에는 큰 상이나 큰 은혜를 받는다는 뜻이 있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께서 내게 가말해 주셨다고 기쁘게 노래한다. 곧 주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다”는(시편 13,7) 말도, 주님께서 “선을 베푸셨다”는(시편 119,17; 142,8) 말도, 주님께서 네게 “잘해 주셨다”(시편 116,7)는 말도 모두 가말을 옮긴 것이다.

또한 낙타를 타고 이웃 성읍들을 찾아가 다양한 사람을 상대했던 상인은 신용을 잘 지키고 계약에 충실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말은 ‘(계약 등에 따라) 충실히 행하다’, ‘(임무를) 완수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윗은 마지막 승전가에서 “주님께서 내 의로움에 따라 나에게 행하시고”(2사무 22,21 = 시편 18,21)라고 노래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내 의로움에 따라 나에게 가말하시고’이다. 하느님은 내가 행한 정의에 따라 그대로 내게 되갚으실 것이라는 뜻이다.


■ 상인의 생활 언어

가말은 먼 길을 떠나는 상인의 생활 언어였다. 험한 광야와 사막을 뚫고 반드시 거래를 성사시켜야 생존할 수 있는 소박한 사람의 희망과 염원이 담겨있다. 세 번째 알파벳은 이처럼 삶의 진한 현장에서 태어나고 다듬어진 글자였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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