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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7월 2일: 성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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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

▨7월 2일: 성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St. Bernardino Realino)

1530~1616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예수회 사제.

성인은 이탈리아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리며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성인은 의사가 되려 했지만 법을 공부해야 사회적으로 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성인은 변호사와 판사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원칙을 준수하는 공정하고 정직한 판결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또 집안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종종 허무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세속적 성공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은 예수회 8일 피정에 참가합니다. 피정 중에 성소를 고민한 성인은 성모님의 환시를 봅니다. 이를 계기로 성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회에 입회합니다. 성인은 수련 기간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습니다. 워낙 화려한 이력을 지녔던 터라 수도회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대던 이들도 많았지만 성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족 집안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생활했습니다.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빈민 지역을 찾아가 가난한 이들을 위로했고 교도소와 병원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 이야기를 정성을 다해 들어주는 성인에게 감동했습니다. 성인이 고해성사를 주는 날이면 성당 주변은 고해성사를 보러 온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성인은 또 탁월한 교리교사였습니다. 수도회 수련생들의 교육을 도맡으며 예수회원 양성에도 힘썼고 예수회 대학 학장을 지냈습니다.

성인은 40년 넘게 이탈리아 레체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수도회 부름을 받고 나폴리나 로마 등지로 사목 활동지를 옮기려 할 때마다 병이 나거나 날씨가 나빠져 이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도회 장상들은 이를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였고 성인이 선종할 때까지 레체 지방에서 사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인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성모 마리아’를 부르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성인은 1947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7월 4일: 아우스부르크의 성 울리히(St. Ulrich of Augsburg)

890~973년 스위스 출생 및 독일 선종 주교.

독일 아우스부르크교구 주교를 지낸 성인은 당시 많은 성당을 짓고 신학교와 학교를 세우며 신자들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성인은 주변 이민족의 침입으로 교구가 폐허가 됐을 때 교구 재건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또 주교로서 평화의 사도를 자처하며 이웃 나라들의 전쟁을 막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993년 요한 1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는데 교황이 주례하는 시성식 절차가 공식적으로 갖춰진 뒤 처음으로 시성된 분입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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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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