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금주의 성인]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344?~407년 안티오키아 출생 및 콘스탄티노플 선종 총대주교 교회학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에겐 유명한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뜻의 금구(金口)입니다. 설교를 워낙 잘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성인이 설교했다 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고 강론 땐 박수가 터져 나와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를 지낸 성인은 처음부터 성직자를 꿈꾸진 않았습니다. 한때 세속적 출세를 위해 노력했지만 부정부패와 암투가 가득한 세계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로 눈을 돌렸습니다. 당시 유명한 학자들에게 신학 성서주석학은 물론 법학 철학을 두루 배운 성인은 광야로 가서 은수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배움이 모자랐다고 느꼈는지 2년간 동굴에서 생활하며 성경 읽기와 고행에 몰두했습니다.

동굴 생활은 성인의 건강을 크게 해쳤습니다. 이를 걱정한 성인 어머니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며 성인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나서야 성인은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후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성경 해석과 심금을 울리는 강론에 있어 성인을 따라올 이가 없었습니다. 성인은 또한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와 같은 명성에 힘입어 성인은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됩니다. 성인은 주교로서 교회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부패한 성직자와 안락한 생활에 젖은 수도자들을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성직을 사고판 주교들을 가차 없이 면직시키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먼저 내놓으며 병원을 세우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도왔습니다.

신자들은 성인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일부 성직자와 사회 지도층들은 성인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성인에게 불만을 품은 이들은 성인을 모함해 결국 주교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고는 멀리 유배를 보냈습니다. 신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폭동까지 일으키며 성인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부자와 기득권층은 성인을 다시 더 먼 유배지로 보냈습니다. 두 번 유배로 심신이 지친 성인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은 412년 성인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1568년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성인은 설교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5-09-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19

시편 31장 20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