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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10월 31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볼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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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1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볼프강

934~994년 독일 출생 및 오스트리아 선종 주교.

1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3대 성인 주교 중 한 분입니다. 다른 두 성인은 울리히(890~973) 주교와 콘스탄스의 성 콘라드(900~975) 주교입니다. 성인은 주교로서 교회 쇄신과 이교도에 대한 선교에 힘썼습니다.

성인은 귀족 가문 출신입니다.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랐고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정교사였던 신부님들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성인은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는데 머리가 뛰어나 늘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좋은 집안에 공부까지 잘하니 성인에겐 늘 시기 질투가 뒤따랐습니다. 성인은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고 뒤에서 험담하는 학계 분위기에 질렸습니다. 수도자가 돼 조용히 은수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즈음 성인의 친한 친구인 하인리히 신부가 트리어 주교로 임명됐습니다. 하인리히 주교는 성인이 얼마나 똑똑하고 또 겸손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에게 트리어 주교좌 성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인은 쉬고 싶었지만 친구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인리히 주교는 트리어 교구장으로서 교구 개혁과 교회 쇄신에 앞장섰는데 성인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인에게 많은 사목적 조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인리히 주교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하인리히 주교가 죽고 나자 성인은 오랫동안 꿈꿨던 수도자가 되기 위해 베네딕토회 한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교회 지식은 물론 영성마저 뛰어났던 성인을 알아본 수도자들은 성인에게 배움을 청했습니다. 성인의 명성은 곧 수도회 담을 넘어 나라 전체로 퍼졌습니다. 귀족과 정치가들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훗날 독일 황제가 된 헨리코 성인도 성인에게서 배웠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성인은 기도와 묵상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에 중심엔 언제나 기도가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얼마 후 레겐스부르크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습니다. 성인은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청빈의 정신을 강조하며 부정부패와 나태에서 벗어나기를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또한 교구 내 가장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주었습니다. 교구민들은 성인을 두고 ‘위대한 자선가’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성인의 이러한 행보가 불편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성인을 모함해 교구에서 성인을 쫓아냈습니다. 성인은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조용히 사태를 받아들였습니다. 남은 삶을 시골 수도원에서 보낸 성인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중 병에 걸려 숨졌습니다. 성인은 1052년 레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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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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