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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11월 15일: 성 레오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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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5일: 성 레오폴드

1075~1136년 오스트리아 출생 및 선종 후작 오스트리아 수호성인.

성인은 ‘선한 군주 레오폴드’라고 불리며 선종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했습니다. 성인은 당시 어수선한 정치 상황에서 세속 권력에 휩쓸리지 않고 현명한 통치를 펼쳐 평화와 안정을 이뤄냈습니다.

성인이 태어나던 때는 독일 황제와 교황이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독일 황제와 교황은 주교와 수도원 장상 임명권을 두고 서로에게 임명권이 있다며 다퉜습니다. 귀족들은 황제편과 교황편으로 나뉘어 눈치 보기에 바빴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은 23살에 아버지에게서 후작 작위를 물려받았습니다. 10년 뒤엔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 딸 아녜스와 혼인해 11명의 자녀를 길렀습니다.

성인은 황제의 딸과 결혼했지만 황제의 권력을 이용하지도 황제의 권력에 휘둘리지도 않았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성인은 자신의 신앙에 따라 가톨릭 교회를 수호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교황과 주교들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성인은 자신이 통치하던 지역에 순례자 숙소를 만들고 수도원을 세우며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면서 성인은 아들 오토가 주교가 돼 자신이 통치하던 지역의 교구를 맡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파리로 유학을 간 아들 오토는 봉쇄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해 수도자가 됐습니다. 성인은 아들이 자기 뜻을 따라 주지 않은 것에 실망했지만 이 또한 하느님 뜻이라 생각하고 아들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훗날 프랑스 부르고뉴 마리몽도 수도원 원장이 된 아들은 성인에게 오스트리아에도 시토회 수도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성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아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수도원을 지어줬습니다.

성인은 교회를 위해 여러 조직을 만들고 건물을 세웠으면서도 군주로서 한 번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꺼이 교회에 봉헌했습니다. 그 덕분에 성인이 통치하는 지역은 교회와 큰 갈등 없이 늘 편안했습니다.

성인은 하인리히 4세 뒤를 이을 황제 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잘 지내왔던 성인이었지만 권력욕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성인은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황제직을 거절했습니다. 성인은 1136년 사냥하던 도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황 이노센트 8세는 1485년 레오폴드 후작을 성인으로 시성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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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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