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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8)“아들아, 로봇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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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애가 딸이라서, 그냥 하고 싶어 하는 거 시키려고. 발레나 미술 같은 거 있잖아.”
 

아들만 둘인 나에게 이런 대화는 공격처럼 느껴진다. 미래에서 온 이상한 사돈을 만난 것처럼 불편하다.
 

‘그럼 아들만 키우는 나는, 뭘 시켜야 하니?’
 

지난 주일, 성당에 갔는데 허리가 구부러진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을 훑어보더니) 아들만 이렇게 둘? (고개를 가로저으며) 안 돼…. 내가 아들만 셋인데 키워놓고 보니 너무 외로워. 아들 소용없어. 딸을 낳아. 계속 낳다 보면, 딸이 나와.”
 

그렇게 “아들! 아들!” 했던 세대가 아닌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자식을 낳았던 그 세대가 아닌가. 세월이 흐르니 딸이 귀해졌다. 시대만 달라졌을 뿐 부모는 여전히 자식들을 통해 이득이 되는 쪽을 따진다.
 

어느 날, 큰 아이 지성이에게 물었다. “지성이는 요즘 유치원에서 누구랑 이야기 많이 해? 누구랑 장난 많이 쳐?” “음…. 선우랑 종민이랑 지호.” “윤정이랑 지윤이랑도 친하지 않았어?” “이제 멋진 친구들이랑 놀아. 남자 친구들이 멋지잖아.” 분홍을 제일 좋아하다가 파랑으로 갈아탄 지성이에게 “로봇과 팽이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들도 있다”고 말해줬다.
 

부엌은 엄마만의 공간이 아니며, 아빠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 순간,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한’ 곰 세 마리 노래가 거슬렸다.
 

얼마 전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왔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 며느리는 일도 안 하는데 둘째를 낳을 생각도 안 해요. 아들은 주말에도 꼼짝 않고 집에서 애 보느라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못 해요.”
 

나는 평일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아이들을 돌보지만 안쓰러운 시선은 8개월째 육아휴직 중인 남편에게 향한다. 역할이 바뀌어도 안쓰러운 건 항상 남자 쪽이다. 며느리의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것, 아들이 일하는 것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무겁고 값진 노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정도 글을 읽은 선배가 어깨를 툭툭 칠 것 같다. “지혜씨,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마.”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어린 생명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상의 경험은 소중하다. 한국 사회에서 ‘아내와 엄마’로 살아주고 있는 앞치마를 맨 남편에게 고맙다.
 

혼인과 출산을 통해 여러 번 깨지고 부서졌다. 단편적이었던 관계가 복잡해지고, 각자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무엇이 사랑인지’ 다시 생각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 그분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귀한 동아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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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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