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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11)남편의 육아휴직, 부성애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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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씻어주는 남편은 있어도, 식단을 고민하는 남편은 없다’는 어느 책의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두 아이를 출산한 후, 먹어야 사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4명으로 늘었으니 밥 짓는 노동에 대한 무게는 더해졌다. 결혼 후 ‘아내와 엄마’로 사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반은 알아도 당장 아이의 내일 준비물을 모르는 남편이 많다. 아내와 엄마로 사는 그 친구도 직장인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직장 상사와 대표를 놀라게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남편에게 육아와 집안일이 통째로 넘겨졌던 초반, 퇴근하고 아이들을 재워놓고 부엌에 섰다. 국을 끓였고, 생선을 굽고 채소를 볶았다. 그러나 피곤이 쌓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고, 슬슬 손에서 부엌일을 놓게 됐다.

지난 주일, 아이들이 주일학교 교리를 받는 동안 유치원 엄마들과 커피를 마셨다.

“이번 주에 유치원 알리미가 안 왔던데, 그렇죠?”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못 받았다고 하는 와중에 남편도 맞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유치원 준비물과 수업 내용이 ‘알리미’라는 앱을 통해 오는데 이번 주 알리미가 안 왔다는 걸 나만 몰랐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한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바깥양반은 몰랐죠?” 바깥양반은 나였다.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남편은 ‘안사람’으로 통했다. 모이면 남편과 시댁 뒷담화를 하던 엄마들이 남편을 보고 불편해 하자, 남편이 엄마들한테 편하게 생각하라며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남편이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시차 적응은 좀 밖에서 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호텔이나 이런 데서. 일하러 나갔을 때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집에 와서 잠만 자는 걸 보면 보기가 싫고….”

엄마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아빠들은 뒤쪽 테이블에 따로 앉았다. 집에 돌아와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 아빠들 이야기’를 남편과 나눴다. 남편이 말한다.

“운전대를 줘야지! 주차도 해보고, 기름도 직접 넣어보게 해야지. 안 그러면 평생 조수석에만 앉아 있는 거지.”

말투에서 뭔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 정신없이 저녁을 해먹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는 아이들과 먼저 잠이 들었다. 늦은 밤, 부스럭 소리가 나서 눈을 반쯤 떴는데 남편이 둘째 기저귀를 갈고 책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알고 보니 모성애만 위대한 게 아니었다. 부성애도 시간과 자리만 마련되면 쑥쑥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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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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