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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20)1등 안 해도 괜찮아! 즐거우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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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는 누구를 닮아 그렇게 총알처럼 잘 뛰어요?” 성당에서 우연히 만난 유치원 원장 수녀님이 물었다.

“어우, 저는 아녜요.” 학창시절, 달리기만 하면 꼴찌를 겨우 면했거나 꼴찌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손사래를 쳤다.

“그럼 아빠를 닮았나 봐요.” 원장 수녀님께 이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지성이가 반에서 계주 선수로 뽑혔는지 몰랐다. 거의 일주일 전 반에서 달리기 시합을 했고, 제일 잘 달렸다는 것을 운동회를 앞둔 며칠 전에 알았다.

반에서 키도 제일 작은 도토리 같은 아이가, 태어날 때 몸무게 1.9kg을 기록했던 아이가 1등을 하다니. 어느새 나는 내 자식이 1등을 거머쥔 팔불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 자식 자랑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하며 지성이에게 물었다. “지성아, 유치원에서 달리기 선수로 뽑혔어? 몇 등 했어?”

그런데 뜬금없이 ‘2등’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물었다. “지성아, 솔직하게 답해주면 엄마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크리스마스 때 지성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 달라고 이야기해볼게. 몇 등이야?”

눈이 잠시 반짝거리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1등.”

팔불출 엄마가 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알렸다. “지성이가 반에서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1등을 해서, 계주 선수로 뽑혔어요. 모두 구경 오세요!”

운동회날 아침이 되자, 눈을 비비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 오늘 달리기 시합 안 하고 싶어. 1등 해야 되면 안 뛸래.”

“아니, 지성아. 한 명이 1등을 하는 게 아니라 5살 동생들이랑 7살 형들이랑 이어달리기로 뛰는 거야. 이기려고 뛰는 게 아니야.”

“7살 형들이랑 뛰어야 하면 더 안 하고 싶어.”

‘야, 엄마는 달리기를 못 해서 계주 선수를 하고 싶어도 못했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목소리에 너그러움을 장착하고 다시 말했다.

“지성아, 1등 안 해도 괜찮아. 백팀이랑 홍팀이랑 나뉘어서 즐겁게 이어달리기하는 거야~.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즐거우면 되는 거야.”

드디어, 운동회 마지막 순서인 계주가 시작됐고 백팀이었던 지성이는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된 모습이었다.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헉헉대며 운동장 반 바퀴를 돌았다. 앞서 뛰는 친구와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 기특하고 미안했다. 지성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세웠다.

“엄마, 내가 더 잘 달릴 수 있었는데 앞 친구가 막대기(배턴)를 너무 늦게 줬어. 그래서 잘 못 뛰었어. 그렇다고 내가 못 한 건 아니야.”

아직은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체구의 아이를 꼭 안아줬다. ‘지성아, 1등 하라고 해서 미안해….’

아이를 잘 키우는 것 보다, 내가 엄마로서 잘 성장하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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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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