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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눈] 스타벅스, 민주주의를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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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시 금남로에 있던 가톨릭센터는 광주대교구 교구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교구청이니 당연히 교구의 여러 기관 사무실이 있었고 무엇보다 광주대교구 교구장 집무실이 건물 6층에 있었습니다. 그 6층의 교구장 집무실에서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는 ‘인간사냥’을 목격합니다.

계엄군이 진압봉으로 시위대뿐만 아니라 아무 연관 없는 시민들을 내리쳤습니다. 계엄군은 대검으로 시민들을 위협하여 옷을 벗기고는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말끔한 신사의 옷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계엄군에 맞아 기절한 시민은 도로 바닥에 질질 끌려갔습니다. 휴전선에 있어야 할 탱크는 대학교 캠퍼스에 있었고 무장한 헬기의 굉음이 광주 시내를 가득 채웠습니다. 계엄군들은 악랄했고 시민들은 무력했습니다. 금남로의 집무실에 있던 윤 대주교는 그걸 보았던 겁니다.

하지만 윤 대주교는 내려가 돕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저 거리의 시민들처럼 당할까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윤 대주교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말입니다.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이웃을 보고도 무서워서 그냥 지나쳐버린 사제가 바로 대주교 자신이라고 느꼈습니다. 천주교 주교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서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윤 대주교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윤 대주교는 지금도 5월만 되면 그 죄책감이 떠오른다고 겸손히 고백합니다.

최근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인 지난 18일 ‘탱크 시리즈’ 텀블러 판매 행사를 시작하며, ‘탱크데이’라는 표현과 ‘5/18’이라는 날짜,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홍보에 사용했습니다. 정상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이를 보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력 진압과 치안본부의 박종철 열사 고문 사건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굴지의 대기업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피맺힌 역사를 마케팅의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행태”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에 작심하고 비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냐”며 “분노한다”고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시민들은 스타벅스 텀블러와 머그잔을 깨며 일명 ‘탈벅’을 인증했습니다. 국내의 대형 음악 축제에서는 스타벅스의 부스 운영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하다며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며 사과했지만, 이미 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분노로 끓어오른 다음이었습니다. 이번일이 정 회장의 사과문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정 회장이 밝힌 후속 조치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만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스타벅스, 민주주의를 조롱하다 >입니다. 5.18의 아픔이 더 이상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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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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