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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교중미사를 앞두고 대흥동성당의 종지기 조정형(프란치스코)씨가 종 줄을 그러모아 틀어쥔 채 온 힘을 다해 종을 치고 있다. 장광동 명예기자 |
부활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 40m 높이 종탑에 힘겹게 올라온 종지기는 하늘 향해 두 손 모으듯, 종과 이어진 밧줄을 그러모아 틀어쥔다.
종탑에 가져다 놓은 라디오에서 낮 12시 시보가 울리자마자 종 줄을 힘있게 끌어당긴다. 작은 종 3번, 중간 종 3번, 큰 종 3번. 그러고 나서 잠깐의 침묵 뒤에 큰 종을 빠르게 땡땡, 땡땡 두 번씩 연타하는 종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린다. 길어봐야 1분 40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다.
1919년 설립돼 내년으로 설립 100주년 맞는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종지기로 평생을 살아온 ‘방지거 아저씨’ 조정형(프란치스코, 72)씨의 평범한 일상이다.
6층까지 120여 개의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종탑은 생각보다 넓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불과 일고여덟 평쯤 될까 말까 한 공간. 그 비좁고 추레한 종탑에서 그는 종을 치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1969년 10월부터니까 올해로 꼭 50년째다.
후회는 없다. 1969년 10월, 대전 목동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 친구 권영희(마리아)씨의 소개로 성당 종지기로 일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청소나 관리 업무 같은 성당의 궂은일도 마다치 않았다. 처음에는 새벽 6시에도 삼종을 쳤지만, 40년 전부터는 낮 12시와 오후 7시, 두 번만 친다. 주일에는 오전 10시와 낮 12시, 오후 7시, 세 번 친다. 새벽 6시 삼종을 멈춘 건 지역 주민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낮 12시와 오후 7시 삼종 소리는 이제 도심 대흥동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딱 한 번, 그가 삼종을 멈춘 적이 있다. 10년 전, 이스라엘과 이집트, 로마 성지순례를 다녀왔을 때다. 본당 보좌신부가 종을 대신 쳐주겠다고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억지로 다녀왔다. 그런데 다녀와 보니 작은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 “종소리가 다르다”고. “누가 종을 이렇게 치느냐?”고 동네 주민들, 심지어는 대흥동에 살던 외국인까지도 항의전화를 했다. 당시 보좌신부는 “종 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겠느냐”며 멋쩍어했다고 한다. 그때를 제외하고 그는 50년째 대흥동성당의 종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종을 치는 데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그는 “먼저 있던 분이 가르쳐준 대로 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소리는 지역마다, 또 성당마다 다르고 그게 또 제맛인데, 요즘엔 전자종이 보급되면서 종소리가 획일화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종을 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은 신자들이 종소리를 듣고 기도하도록 이끌어줌으로써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돕는 것뿐”이라며 “종 치는 일은 저의 평생 소명이었다”고 말했다.
종을 친다는 것, 어찌 보면 하찮은 일이지만 그는 그 일을 통해 주님 생애 전체를 관상하며 부활을 준비해왔다. 부활로 가는 여정이었다. 2014년 8월, 하느님 곁으로 간 아내 김정희(마리아)씨를 빼고는 자식도, 벗도 많지 않지만, 종 치는 일만으로 그는 행복했다. 종소리가 들리는 곳마다 ‘시간 속 성전’이 되는 그 오롯한 기쁨이 있었다. 낮 12시 삼종을 치고 난 방지거 아저씨가 독자들에게 부활 인사 한마디를 남긴다.
“예수님의 부활로 형제 자매님들과 모든 가정에, 또 하시는 일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축복과 사랑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종 치는 일로 기도를 대신해온 조씨는 일상에서 사도직에 투신함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1일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