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세속화된 도시 중 하나다.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종교가 퇴색한 북유럽을 둘러본 뒤 “만약 비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이 존재한다면 덴마크와 스웨덴일 가능성이 높다”(「신 없는 사회」)고 말했는데, 암스테르담도 이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시 상황과 다르지 않다.
암스테르담에서 최고 번화가는 칼베르 거리다. 쇼핑센터가 즐비하고, 수백 개의 커피숍에서 젊은이들이 마리화나를 버젓이 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등가도 그곳에 있다. 이 거리는 밤이면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변한다.
이 불야성 같은 거리에서 매년 3월 작은 종교 행사가 열린다. 가톨릭 신자들이 알코올과 환각제, 매춘이 범람하는 번화가를 밤새 조용히 걷는 행사다. 행사명은 ‘조용히 걷기(Stille Omgang)’. 참가자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거나 성가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걸을 뿐이다.
미국 가톨릭 매체 ‘더 필러’가 지난 3월 16일 밤 열린 행사 풍경을 현지에서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젊은이가 다수인 참가자들은 암스테르담의 얀 헨드릭 주교 주례 미사를 봉헌한 뒤 거리로 나왔다. 참가자들이 약 200명씩 조를 짜서 각기 다른 시간에 출발하기 때문에 행렬이 새벽 4시까지 번화가를 여러 번 지나가게 된다.
교회의 건재함 드러내
행사 조직위 봉사자 브레닝메이저는 “교회가 문을 닫고 신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오늘은 큰 무리를 이뤄 서로 바라보면서 ‘이봐, 우리는 아직 이렇게 건재하고, 여전히 사람들 눈에 띄어!’라고 말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걷기’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6년에는 참가자가 8만 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이 행사의 기원은 ‘암스테르담의 기적’이라 불리는 700여 년 전의 성체 기적 사건이다. 1345년 3월 한 부인은 남편의 임종이 다가오자 병자성사를 위해 본당 신부를 모셔왔다. 남편은 성체를 영했지만 그만 토하고 숨을 거뒀다. 신부는 규정대로 토사물 범벅이 된 성체를 불 속에 넣고 태웠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놀랍게도 성체가 잿더미 속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 집에 머물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했다. 칼베르 거리에 있는 그 집은 얼마 뒤 경당으로 꾸며졌다.
성체행렬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서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암스테르담은 주요 순례지이자 신성로마제국 내의 화려한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봉사자 브레닝메이저는 “순례자들이 찾아오면서 숙박업과 무역업·항만업이 빠르게 발전했다”며 “그러는 사이 암스테르담은 부유한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은 3월이 되면 도시 전역에서 거대한 행렬로 성체 기적을 기념했다.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 때 도시가 개신교(루터교)로 넘어가면서 기념 행사가 봉쇄되다시피 했다. 공개적 신앙 행위 금지령이 내려져 한동안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기도 했다. 행사는 1881년 신자 3명이 조상들의 행렬 경로가 기록된 문서를 찾아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행렬 금지령은 한 세기가 지난 1983년 공식 해제됐다. 주최 측은 가톨릭 탄압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 시민들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밤에 침묵 속에서 조용히 걷는 방식으로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얀 헨드릭 주교는 환락의 밤거리를 조용히 걷는 데 대해 “예수님도 조롱과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외로움을 느끼셨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