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슬 헬레나(신문취재팀 기자)
저출산과 저출생, 무엇이 다를까? ‘출산’은 ‘아이를 낳음’이고, ‘출생’은 ‘세상에 나옴’이다. ‘저출산’으로 불려 온 단어가 ‘저출생’으로 대체된 것은 인구절벽이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다. 저출산이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 즉 여성이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비춰진다면 저출생은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현상 그 자체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취지에 공감한다. 과연 출산이 여성만의 일일까.
저출생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결혼과 출산 지연 현상이 주목된다. 그 배경에는 학벌주의·취업난·집값·가부장제 등 우리나라에 자리하는 사회구조의 얼룩이 깊숙이 배어있다. 그러나 취재 현장에서 마주했던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각종 난임 지원안과 관련 병원들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는 “결혼과 출산을 미룰 수밖에 없는 너의 오늘을 존중해!”라고 다독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난자·배아 냉동 과정에서 여성이 겪을 고통은 교묘히 감춘 채 “현재를 즐기라”며 현혹하는 것이다.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서 들은, 과배란 유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난소과자극증후군은 결코 가벼운 합병증이 아니었다. 평생의 배란 횟수가 정해진 여성에게 과배란을 유도하다가 난자가 나오지 않는 공난포 증후군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때는 지원금마저 뱉어내라고 한단다.
의사는 “조기 폐경 가능성도 있는데, 갱년기 증상을 완화하고자 사용하는 여성호르몬 대치요법의 부작용으로 유방암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의 현재를 존중하는 척하지만, 결혼과 출산 지연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나중에 막대한 건강의 희생을 요구하는 현대판 ‘조삼모사’다.
인공수정을 위해 과배란 유도제를 맞은 지인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하지 말걸 그랬어?.” 저출생이라고 단어만 바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여성의 고유한 출산 능력을 존중하고, 이를 건강하게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먼저다. 여성은 출산 도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