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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죽음 앞에 의연했던 모습 서려

자오린공원의 안중근 의사 기념비 / 안중근 애국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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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이 세운 중국 최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인 고려회관의 장영철 관장이 안 의사 기념비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하얼빈 시내 지단지에(地段街)에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거닐었다는 ‘자오린공원’이 있다. 1900년 처음 세워진 이 공원은 ‘다오리공원’, ‘하얼빈공원’ 등으로 불렸으나, 1946년부터는 중국의 항일전쟁 영웅인 리자오린(李兆麟·1910∼1946) 장군의 이름을 딴 자오린공원이 됐다.

공원의 서쪽 한 켠에는 안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며 지난 2006년에 세운 작은 기념비가 있다. 1.26m 높이의 기념비의 앞면에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 수감 당시 붓글씨로 남긴 ‘청초당’(靑草塘)과 특유의 ‘단지(斷指) 손도장’이, 뒷면에는 ‘연지(硯池)’라는 글자가 각각 새겨져 있다. 굵고 힘찬 붓놀림을 통해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안 의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안 의사는 하얼빈공원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거사 사흘 전인 10월 23일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이곳에서 의거 작전을 세우고 공원 남문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 직전 두 동생 정근(치릴로·1885~1949)과 공근(요한·1889~1940)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내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이장해 달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안 의사의 바람과는 달리 사형집행 후 그의 유해는 공원에 묻히지 못했으며, 국권 회복 후인 오늘날까지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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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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