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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조국 독립·평화 기원하며 당당히 죽음 맞아

안중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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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마지막 행적
안 의사, 세례 준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 보고 미사 봉헌
자서전·필묵 유작 남겨…성금요일 다음날 지상 여정 마감

 
 


 
▲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8일 뤼순감옥 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빌렘 신부와 두 동생 정근·공근을 면회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4분 사형대에 올라 10시15분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였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당당히 죽음을 맞으라는 뜻을 전했고, 그 역시 항소를 포기한 채 형 집행의 날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3월 25일로 원했다. 결국 이 날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에 대한 염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며 신앙인으로서 당당한 순교의 길을 택했다.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된 3월 26일 최후의 순간까지 안 의사의 행적을 재구성해본다.

▲ 1910년 2월 14일

여순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제6차 공판을 통해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선고를 받은 안 의사는 일본 당국의 특별 허가를 얻어 뮈텔 주교(당시 조선대목구장)에게 전보를 보내 신부를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 2월 17일

안 의사는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에게 재판과정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의병장으로서 한 행동을 살인범으로 몰아 심리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또 “세례를 준 조제프 빌렘 신부(당시 황해도 신천본당 주임)가 곧 이곳으로 오는데, 천주교 신자로서 영광스러운 성금요일(3월 25일)에 사형집행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 3월 8일

오후 2시 빌렘 신부는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공근과 함께 법원의 양해 하에 형무소를 찾아 3년 만에 안 의사를 다시 만났다. 빌렘 신부는 안 의사에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마지막 고해성사를 간청한 너의 뜻에 따라 선교사로서 직분을 다하기 위함이며, 또한 네가 항소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기를 바라는 노모와 고향 신자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후 안 의사와 함께 기도를 바친 후 2시간에 걸친 면회를 마쳤다.

▲ 3월 9일

안 의사는 이날 오후 2시 뤼순감옥 2층 면회실에서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봤다. 고해성사는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안 의사가 백지 20장에 걸쳐 적은 내용을 빌렘 신부의 귀에 대고 읽으며 20분 간 진행됐다. 빌렘 신부는 훗날 “그렇게 진지하고 생생하게 고해하는 모습에서 안 의사의 참 신앙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 3월 10일

형무소 교회당에서 빌렘 신부 집전으로 마지막 미사가 봉헌됐다. 신자는 안 의사뿐이었다. 그는 직접 복사(服事)를 서고, 성체를 받아 모셨다. 영성체 후 안 의사는 빌렘 신부에게 한복을 차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빌렘 신부는 이튿날 안 의사에게 마지막 강복을 준 후 뤼순을 떠났다.

▲ 3월 15일

안 의사는 3개월 전부터 집필에 들어간 그의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서둘러 마무리 짓는다. 이 무렵부터 그는 지필묵을 청해 ‘一日不讀書口中生荊刺’(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등 수많은 필묵 유작을 남겼다. 뤼순감옥소의 일본 관헌들도 안 의사에게 붓글씨를 써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 3월 25일

사형 집행일로 예정됐던 이날은 공교롭게도 순종 황제의 생일인 건원절(乾元節)과 겹쳤다. 사실상 주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이었지만, 그래도 황제의 탄생일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통감부로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사형은 그 다음날로 연기됐다. 이를 모르고 있던 안 의사는 형 집행인 줄 알고 나왔는데, 뜻밖에도 두 동생이 면회를 와 있었다. 안 의사는 “평소에 아들 된 도리와 효도를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며 “이번 사건으로 심려를 끼친 불효를 용서해주도록 노모께 여쭈어 달라”고 전했다. 또 장남 안 베네딕토를 장래에 사제가 되도록 길러 달라고 요청했다. 정근에게는 “장래 공업에 종사할 것”을 권고했고, 공근에게는 “학문에 종사해 노모를 잘 모시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는 이어 “사람은 한번은 반드시 죽는 것이므로 죽음을 일부러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간수가 마지막 악수와 기도를 허락했고, 두 동생은 안 의사의 손을 잡고 악수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아갔다.

▲ 3월 26일

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안 의사는 고향에서 보내온 한복으로 갈아입고 간수 4명의 호위를 받으며 형장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검찰관, 감옥소장, 통역 등이 사형장 검시실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안 의사가 끌려나왔다. 교도소장이 사형집행을 통보하고 마지막 유언을 묻자 안 의사는 “특별히 유언할 말은 없으나 단지 내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므로 내가 죽은 후 한일양국이 일치단결, 동양평화를 꾀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동양평화’ 삼창을 제의했으나, 집행인들은 당황하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안 의사의 눈이 백지 두 장과 흰 베로 둘러졌다. 교도소장이 마지막 기도를 허락하자, 안 의사는 2분 여 동안 묵도를 바쳤다.

이윽고 간수 둘이 안 의사를 데리고 계단 위 교수형대로 향했고, 10시4분 형이 집행됐다. 10시15분 경 안 의사는 지상에서의 여정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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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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