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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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수단을 입으며] 강정근 신부(미리내본당 주임)

시골본당은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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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품을 받고 지금까지 시골본당신부만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큼 졸병생활을 시골본당에서 하고 나면 중도시를 거쳐 대도시로 입성(?)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도시본당으로 갈만큼 충분한 신부생활 연수를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시골본당 신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시골로만 다니는지 주교님께서 일부러 그러시지 않고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다녔다.

누가 볼 때 강신부는 철저히 주교님께 밉보였던가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어찌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시골본당 신부 아니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고 여길 만큼 시골본당을 한 번도 싫어 한 적이 없었다. 주교님께 감사를 드린다. 오히려 도시로 보낼까봐 은근히 걱정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이라도 주교관을 향하여 무릎 꿇고 절을 올리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시골로만 다니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왜 내가 시골본당 신부를 좋아하며 시골에 살기를 원하는지 재밌는 얘기 하나를 소개한다. 한 마디로 내 자신이 도시형이 아니기 때문에, 까다롭지 않고 둥글둥글(?)하기에 시골의 환경이 체질에 맞는가 보다. 시골본당은 참으로 푸근하다. 까다롭지 않아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다.

봉성체를 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본명은 말따(마르타)셨다. 봉성체를 몇 년째 매 달 해드리기 때문에 나와 할머니는 어떤 말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허물없이 친해져 있었다. 어느 날 성체를 영해드리고 나서 갑자기 할머니를 놀려드리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할머니와의 나이 차이가 별로나지 않으니 앞으로 트고 지내자며 놀리고 싶었다. 당시 할머니는 87세셨고 나는 마흔 둘이었다.

“할머니, 올해 몇 살 이여?” “나이는 알아 뭣하게?” “물어보면 대답이나 하지 뭔 잔말이여?” “여든 일곱. 왜 그러는데?” “나하고 몇 살 차이도 안 나는구먼.”

“몇 살인데?” “여든 셋.” “떽! 까불구 있어.” “그럼 몇 살이나 되 보이는데?” “잘 해야 여든 갓 넘었거나 안됐거나 했겄네.”

기가 막혔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흔 갓 넘은 신부를 어디가 어떻게 보이기에 여든 갓 넘었거나 말았거나 하다고 보는가? 기가 막힌 건 여기서 끝이 아닌 어느 주일이었다. 미사 끝나고 할머니들을 배웅 하는 중이었다. 그때 웅기중기 모여 있는 할머니들 곁으로 다가가서 말따 할머니를 흉 볼 심사로 할머니가 내 나이를 80을 넘게 보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중 70여살 쯤 되시는 한 할머니가 박장대소를 하셨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다.

“말따 할머니가 망령이 잔뜩 나셨나 보구먼. 아니 이제 70 갓 넘은 신부님을 80이라고 하면 어떻게?” “??????” 난 이때부터 할머니들이 귀엽다. 신학생 때부터 신부가 어르신들에게 반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들에게 존댓말을 쓴 적이 없다. 존댓말을 하려면 오히려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새파란 신부가 버르장머리 없게 반말 짓거리나 한다고 야단맞은 적도 없고 교구청에 투서가 들어갔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주일이면 술에 떡에 먹을 걸 싸가지고 가져다주시는 할머니들은 오히려 말 트고 지내는 할머니들이시다. 그러니 내가 반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만큼 할머니들에게 사랑 받는 신부가 없는듯하다. 할머니들에게 이렇듯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시골본당에는 할머니들이 많다. 그러니 내가 시골본당을 떠나고 싶겠는가? 아마 주교님은 이러한 나의 달란트를 이미 알고 계시기에 시골본당으로만 골라 보내셨나보다. 그런데 요즘 조금 서글퍼진다. 미사에 못 나오시는 할머니들이 늘어나 한 분 두 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님께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오늘은 약산마을 술친구 니코데모 할아버지 장례미사다. 최근 문병도 재대로 못해 죄송했는데 약산을 가면 이제 허전한 마음 어찌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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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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