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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교수대로 향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안중근 최후의 날 / 순국의 현장, ''''''''뤼순 감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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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순 감옥 내부.
 2개 층으로 이뤄진 감옥 본관동은 방사형 감옥 복도를 중앙에 선 간수가 모두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커우(旅順口)에 위치한 ‘뤼순감옥’은 다롄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차로 1시간 거리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11월 1일 하얼빈을 떠나 11월 3일 이곳 뤼순까지 기차로 압송됐다.

특별취재팀이 뤼순감옥을 찾은 것은 2월 25일 오후 1시께. 감옥 터는 뤼순항이 굽어보이는 시내 뒤쪽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뤼순감옥의 정확한 명칭은 ‘여순일아감옥구지’. 1902년 제정러시아가 건설에 들어갔으나 ‘러·일전쟁’이 터지면서 중단됐고, 1907년 일본 점령군이 이를 완성시켰다. 중국 정부는 1988년 이곳을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 원형을 보존하며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연간 5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유적지로 만들어 입장료까지 받고 있으나, 한국인은 환영받을 수 없는 곳이다. 취재팀을 안내해 준 현지 가이드는 “뤼순감옥은 군사지역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특히 한국인은 입장이 어렵고 사진촬영도 불가하다”며 “감옥 안에서 한국말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표를 끊고 감옥 입구에 들어서자 또 다른 부지가 펼쳐진다. 대지 22만6000㎡, 건평 1만1400㎡에 달하는 감옥은 당시 동북지방에서는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다. 감방 수는 총 257개였으며, 2평 남짓한 감방 하나에는 6명의 죄수들이 수용됐다. 2개 층으로 이뤄진 감옥 본관동은 방사형 감옥 복도를 중앙에 선 간수가 모두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

각각의 감방에는 당시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 등이 진열돼 있었다. 감방동 한쪽의 고문실에는 사람모양의 나무틀과 쇠사슬, 수갑, 몽둥이 등 고문도구가 즐비하게 걸려있어 일제의 잔혹했던 만행을 여실히 드러냈다.

감방동을 나와 교수대가 설치된 사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안 의사는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봄의 전령을 맞으며 죽음으로 걸어갔던 그의 심정이 새삼 와 닿았다.

전시실로 들어섰다. 감옥 측은 당시 사형수의 유해도 발굴해 전시하고 있었다. 지름 50cm 남짓한 나무통에 구겨 넣어진 유골을 보자니 소름이 돋고 목덜미가 곤두섰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맨 끝 복도로 나서면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감방이 나타난다. 감옥 측은 당시 안 의사를 위해 간수방과 연결된 새로운 독방을 만들었다. 안내판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감방’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쇠창살 사이로 들여다보자 창문 앞으로 안 의사가 사용했던 침대와 책상이 보였다. 안 의사가 앉아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바로 그 책상이다. 책상 위로는 끊임없이 밝은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안 의사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감옥을 나서자 끝없이 이어진 4m 높이의 붉은 담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그 하늘 너머로 안 의사의 최후 유언이 들려오는 듯 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 의사 감방 외부.
벽에 붙은 안내판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을 구금했던 감방’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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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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