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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귀화 수녀, 이주민·난민들의 든든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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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난민센터 공부방에서 미등록 아동들과 함께 하고 있는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왼쪽에서 두 번째).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 제공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10)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사순 시기 담화 주제다. 교황은 사순 담화를 통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 버려지고 거부당한 이들,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촉구했다. 사순 시기를 맞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좋은 일을 해 나가는 이들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1) 이주민ㆍ난민과 동행하는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제주난민센터) 수녀



▲ 법무부가 2월 24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강당에서 열린 ‘특별공로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가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고 있다.


특별공로자로 한국 국적 취득

올해 그의 나이 46살. 서른한 살의 나이로 한국에 온 루마니아 출신의 수녀. 19살 때 루마니아에서 성령선교수녀회에 입회한 그가 한국생활 15년 만에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법무부가 특별공로자 국적 수여 10년째를 맞아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선교사와 네팔의 타망 다와 치링 스님과 함께 제10대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은 것.

“처음에는 한국에 왔을 때 필요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노력한 것에 대해 보답을 받는 기분이에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죠.”

갈 크리스티나 에벨리나 수녀는 지난해 10월 법무부에서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국적을 취득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루마니아 국적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특별 귀화이기 때문에 루마니아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지금은 2중 국적을 갖게 됐습니다. 저한테는 선물이죠. 15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는데, 국적을 수여받은 날은 제게 특별한 날이었어요.”

한국인이 된 그는 주민등록증을 갖게 됐고, 한국인들과 똑같이 국민연금도 내고, 더 폭넓은 의료보험 혜택도 받게 됐다. 무엇보다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직업에 한계가 있었는데 그 제한마저 없어졌다. 그가 속한 성령선교수녀회에서 영주권과 국적을 취득한 수도자는 그가 유일무이하다. 1889년 설립된 성령선교수녀회는 국제수도회로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40여 개국에 파견돼 교육과 의료, 사회복지 사도직을 실현하고 있다. 에벨리나 수녀가 2018년 제주도에서 영주권을 땄을 때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다른 국적의 수도자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이주민으로서 이주민 돌봐

그는 한국에 와서 이주민들과 함께 지냈다. 의정부·안양·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를 두루 거치며 이주 노동자와 이주 아동 및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관리하고, 무엇보다 이들의 한국 정착을 돕는 데 힘썼다.

“처음에는 한국말이라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밖에 몰랐을 때였어요. 문화가 다른 외국인이다 보니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어요. 외국인이니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본당에서도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이주사목 사무실에 찾아오면,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한국 수녀님을 찾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럼 결국에는 한국 수녀님이 에벨리나 수녀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연결해주고요. 인간적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어요.”

누구보다도 이주민의 마음을 잘 아는 그는 이주민으로서 이주민을 돌봤다. 의료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보호자 없이 생활하는 이주민들에게는 보호자가 되어줬다.

치료비가 없어 발동동 구르는 이주민들을 위해서는 성금을 모금하러 다니거나, 후원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차별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안아줬다.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주 여성들의 요리 수업 준비를 도우며 같이 한국 음식을 배우기도 했다.

“제가 잊어버릴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어요. 안양에서 만난 20대 캄보디아 여성이었는데, 급성 희귀병이었거든요. 농사일하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는데, 아프다고 하는데도 사장이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죽기 전에 센터에 찾아왔어요.”

그는 가톨릭평화신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소개됐고, 한국 독자들에게 성금을 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캄보디아로 돌아갔지만 생사는 모른다.



제주의 예멘 난민 도와


그가 본격적으로 난민들을 돕기 시작한 건 2017년 크리스마스 때 제주도로 옮기면서였다. 이듬해 3월부터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입국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임시 거주할 수 있는 공소와 신자 집을 연결해주기 시작했다.

“예멘 난민들을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난민들을 직접 만나고 면담해야 하는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500여 명의 난민이 제주 전체에 흩어지자, 출입국에서 감당을 못한 거죠. 어디에 있는지 파악도 안 되고, 불러서 면담을 해야 하는데 찾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출입국에서 이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연락을 해 와서 직원들과 많이 싸웠습니다. 우리한테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느냐면서요.”

그는 난민들을 도우면서도 속상한 일도 여러 번이었다. 한 단체는 신문기사를 통해 쌀과 밀가루를 난민센터에 100포대를 기부했다고 알려놓고선, 정작 센터에는 20kg짜리 밀가루 한 포대를 보내왔다.

“제주에 예멘인들이 들어왔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반대해 거의 1년이 넘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건 마음 아픈 일이에요. 1년 전만 해도 우리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지금 울산에서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역사가 똑같이 시작되고 있어요.”



따뜻한 한국인들에 감동


그는 난민과 이주민 곁에서 마음이 따뜻한 한국인들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또 “수녀로서 하느님한테 받고 있는 이 사랑을 이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산다”고 털어놨다.

“도움을 받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저는 잘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가장 큰 감사의 표현은 이제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삶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난민과 이주민은 서로 다른 아픔을 갖고 있지만 본인들이 노력하는 만큼 잘 될 수 있습니다.”



이주민의 정체성 존중해주길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 난민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면서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국 국적을 따고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해도 저는 루마니아 사람으로 죽어요. 이들도 한국인처럼 똑같이 될 수 없고, 한국인과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어요. 한국인들이 그런 기대를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인이 된 그는 이제 이주민뿐 아니라 한국인들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인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국적을 받았지만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겠지요. 하느님만 알아요.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것이니까요.(웃음)”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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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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