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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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간 마을… 집도 일터도 까맣게 타버렸다

경북 울진 화재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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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용대(베로, 55, 울진본당), 강정아(베로니카, 53) 부부가 최상희 주임 신부와 폐차장 뒷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쌓여있던 차량 130대는 모두 불에 탔다.

 

 
▲ 가는 곳마다 땅은 검었고 나무는 누렇다. 불은 진화됐지만 땅속엔 열기가 남아 있어 나무들은 서서히 말라 죽는다. 솔향이 은은했던 울진엔 매캐한 연기내음만 가득했다.

 

 


13일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9박 10일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일대를 집어삼킨 불은 비가 내리면서 사그라졌다. 4일 오전 11시 17분 불이 나기 시작한 지 213시간 만이었다. 화재 일주일째인 11일 경북 울진 현장을 찾았다. 아직 주불이 잡히지 않았을 때라 가는 곳마다 재가 날리고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피해를 당한 안동교구 울진본당과 북면본당 신자들을 만났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20년 세월 보낸 직장, 뼈대만 남아

경북 울진에서 폐차장을 운영하던 원용대(베로, 55, 울진본당)씨는 까맣게 타들어 간 건물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인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울진에 터를 잡고 20년 가까이해 온 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남편을 지켜보던 아내 강정아(베로니카, 53)씨는 말없이 등을 돌려 애꿎은 하늘만 쳐다봤다. “두두두두.” 소방 헬기들이 드문드문 오갔다. 내륙 쪽 주불이 아직 잡히지 않았서였다. 저 멀리 산기슭에선 계속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주일 내내 저 헬기 소리를 들었지만 적응이 안 되네요. 처음 불이 났을 때는 헬기 수십 대가 다녀서 집 창문이 다 떨릴 정도였어요. 지금도 헬기 소리가 좀 크게 들리면 어디 가까이서 불이 난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신자들이 많아요.”

안동교구 울진본당 주임 최상희 신부는 “주변 산이 시뻘겋게 타들어 가 연기 때문에 앞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총소리만 안 났지, 전쟁 상황 같았다”고 말했다.

4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바람을 타고 북쪽 삼척을 태우다가 다음날 다시 방향을 바꿔 남쪽 울진 읍내로 향했다. 원씨는 불이 울진 읍내로 번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긴장했다.

“설마 했어요. 아내는 피해 있으라고 하고 아침부터 폐차장 주변에 물을 뿌리고 있었죠. 연기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어요. 10시 30분쯤인가 폐차장 뒷산에서 불길이 보였는데 폐차장까지 덮치는 데 순식간이더라고요. 마당에 가스통 40여 개가 있었거든요. 너무 무섭기도 했고, 혼자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몸만 빠져나왔어요.”

119에 신고했지만 폐차장으로 보낼 소방차가 없다고 했다. 인근 도로엔 한울원전으로 향하는 소방차들이 줄을 이었다. 읍내엔 주유소와 LPG 가스충전소가 있어 소방차 몇 대가 읍내로 빠졌다. 원씨는 차 한 대를 맨몸으로 가로막고 제발 폐차장 쪽으로 가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하지만 더 큰불을 막기 위해 폐차장으로 갈 소방차는 없었다.

읍내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자마자 한달음에 폐차장으로 간 그는 입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까맣게 뼈대만 남은 건물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집기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 키만큼 쌓여있던 타이어들은 다 녹아서 철근만 남았다. 뒷마당에 있던 차량 130여 대는 전소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그냥 눈물만 나더라고요.”

원씨가 사는 집은 폐차장과 마주하고 있다. 희한하게 집은 외벽만 탔고 내부는 멀쩡했다. 살림살이와 옷가지는 그나마 건질 수 있었지만 당장 갈 곳이 없어졌다. 폐차장과 살림집 부지는 울진군청 소유지다. 더는 이곳에서 폐차장 운영을 이어갈 수는 없을 터였다. 원씨와 아내, 아들 세 가족은 본당 부속건물인 만남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내 강씨는 “수녀님께선 같이 울어주시고, 신자분들은 내일처럼 속상해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그나마 가족 모두 무사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부부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감사해요. 감사하지요.”

아내 강씨는 “신앙이 있어서 그나마 이렇게 버티는 것 같다”고 했고 남편 원씨는 “성당에서 지내니 평소 못 나가던 매일 미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는 평소 본당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원씨는 본당 민족화해위원장이고 아내는 재정부장이다.

최 신부는 “가족이 당장 갈 곳이 없는 데다, 폐차장 부지마저 군청 소유라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화재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 부부는 월셋집을 알아보며 살 곳부터 찾고 있다.



집안 세간살이 사라져 봄 농사도 걱정

울진본당은 죽변공소와 서면공소 두 곳을 관할하고 있다. 이번 화재로 죽변공소 지역 피해가 컸다. 서영진(요한 사도) 공소회장 안내로 화재로 집을 잃은 신자 가정을 찾았다. 본당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읍내를 벗어나니 금세 논밭 지역이 나타났다. 굽이굽이 이어진 밭두렁을 따라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 눈에 띄었다. 흙은 까맣게 탔고, 솔잎은 누렇게 떴다. 서 회장은 “소나무들 다 베고 나면 민둥산이 될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패널로 지은 집들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세례를 받은 이영애(엘리사벳, 60)씨 집도 마찬가지였다. 벽돌 골조는 그대로 남았지만 유리창과 패널 지붕은 녹아내리고 깨져서 폭격을 맞은 듯했다. 세간살이 하나 건질 것이 없었다. 마당에 있던 창고도, 뒤편 시어머니집도 폭삭 주저앉았다. 농사지을 씨앗, 농기계는 물론 창고에 보관해 둔 쌀과 잡곡, 먹거리들을 모두 잃었다. 이씨네 가족은 군에서 마련해준 모텔에서 지내는 중이다.

이씨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저는 낮부터 피해 있었고, 남편이 딸들과 남아 집을 지켰었다”면서 “남편이 집에 불이 붙어 활활 타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줬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고 했다. 남편 장상봉(62)씨는 “마을에선 산불이 내려오니 피하라고 했는데, 집을 두고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면서 “최대한 물을 뿌리며 견뎠는데, 온 주변이 불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5일 새벽 2시쯤 불길이 집까지 번졌어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때야 나왔습니다.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소방관들이 진입을 막더라고요. 날이 새고 집으로 돌아오니 재밖에 없었어요. 한참 동안 그냥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아내 이씨는 “복구가 언제 될는지 기약이 없다”고 했다. 아직 주불이 잡히지 않아 피해조사는 시작도 못한 터였다. 조사 전까지는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야 하기에 뭘 어찌할 도리도 없다. 당장 봄 농사를 시작하려면 논밭도 정비해야 하고, 종자도 사야 하는데 막막할 따름이다. 이씨는 “말 그대로 몸만 빠져나와서 아직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 생각하면 황망할 시간 없어

11일 울진 낮 기온은 최고 18℃까지 올랐지만, 누구도 봄기운을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평생 일궈온 일터가 녹아내리고, 수십 년을 살아온 집을 잃은 이들에겐 봄바람이든 한겨울 칼바람이든 매한가지였다.

울진본당 신자들을 만난 뒤 본당에서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16km 떨어진 북면본당으로 향했다. 북면본당 관할지역엔 한국수력원자력 한울본부가 있다. 산불 불씨는 바람을 타고 국도를 넘나들며 수㎞씩 옮겨 다녔다. 4일 한때 불씨가 한울원전 안쪽까지 날아들어 헬기가 긴급 동원되기도 했고, 한울본부 직원들에겐 대피령이 내렸다.

북면본당은 한울본부 사택단지와 맞닿아 있다. 주민들은 본당 주임 김도겸 신부에게도 얼른 피하라고 했다. 김 신부는 성당을 버리고 어딜 가나 싶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라도 성당에 불씨가 날아들까 싶어서다. 아니나다를까 새벽 5시쯤 성당 코앞에 있는 언덕이 불에 타고 있었다. 얼른 119에 신고하고 물을 뿌려댔다. 다행히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 한 대가 와서 불길을 잡았다. 하마터면 성당도 무사하지 못 할 뻔했다.

김 신부는 “본당은 다행히 피해가 없었는데, 신자 중에 30대 젊은 아빠가 이번 화재로 사정이 너무 딱하게 됐다”고 했다. 김 신부 안내로 전시몬(시몬, 38)씨 사업장을 방문했다. 본당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전씨는 마을에서 빌린 창고건물에서 한수원 하청업체에 부속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해왔다. 작업용 장갑에서부터 철근, 목재, 기계, 공구, 안전용품 등 각종 공업용 물품을 취급했다. 창고 옆에 작은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두고 11년을 꾸려온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창고 가득 쌓여있던 자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창고 내부에 들어서자 잿가루가 풀썩거렸다.

“근처에 불이 났단 얘길 듣고 아차 싶어서 사무실에 왔는데 불길이 벌써 가까이 와 있더라고요. 사무실에서 컴퓨터 본체만 들고 나오니 이미 창고에 불이 붙었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나왔죠. 온 동네가 불이더라고요.”

그는 북면청년회 자율방범대에서 활동 중이다. 본인 창고가 타들어 가는데도 다른 방범대원들과 함께 마을을 다니며 잡을 수 있는 불을 끄러 다녔다. 혹시라도 피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있을까 봐 걱정돼서였다. 그러고 돌아와 보니 창고는 뼈대만 남아 있었다.

“허망했죠. 서울에서 아내를 만나 스물일곱에 결혼하고 바로 이곳으로 내려왔어요. 제 사업을 좀 일찍 시작한 거죠. 다음 달이면 셋째도 태어나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주변에 전씨 창고와 같은 건물이 서너 개 더 있었지만 전씨 창고만 전소됐다. 다른 창고들은 불이 붙지 않는 재질로 지어진 건물이라 화를 면했다. 화재 피해 소식을 모르는 거래처에선 평소처럼 그에게 주문을 넣었다. 납품할 재고가 없다는 현실에 그는 비로소 화재를 실감했다. 텅 빈 창고를 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이 몰려왔다. 다 버리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5살 둘째 딸, 만삭 아내를 생각하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는 분이 본인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을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주변 창고 사장님들께서도 많이 위로해주시고요. 신부님도 그렇고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이 일뿐인데, 다시 시작해야죠.”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에게 김 신부는 “젊으니까 충분히 다시 할 수 있다”면서 힘을 내라며 전씨 등을 토닥였다.



나무 다 베고 나면 여름 산사태 우려돼

소방헬기는 울진본당 주변을 둘러볼 때보다 훨씬 자주 하늘을 오갔다. 마을 덕구저수지에 수시로 내려앉아 물을 퍼갔다. 마지막까지 주불이 잡히지 않은 울진 응봉산이 이곳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원전이 가까이 있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소방차들이 거리 곳곳에 대기 중이었다. 경북 김천, 경기 광주, 충북 제천 등 각지에서 온 소방차들이었다. 소방차들이 지날 때마다 도로엔 흙먼지가 날렸다. 바싹 마른 땅들은 이미 검게 그을려 있었다.

김 신부는 불에 탄 소나무들을 보며 산사태를 걱정했다. “솔잎이 아직 푸르러 보이지만 곧 다 죽을 거예요. 불을 꺼도 땅속엔 화기가 남아 있어요. 열기 때문에 나무들이 살 수가 없죠. 여름에 이 지역엔 비가 많이 내리는데 나무 다 베고 나면 산사태가 크게 나지 싶어요. 그 대비도 해야 할 거예요.”

산속에서 소를 키우는 최인희(가브리엘라, 55)씨 집과 축사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니 소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100여 마리의 소들이 볏짚을 뜯고 있었다. 최씨는 “하느님 은총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움푹 팬 땅에 축사와 함께 최씨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씨 남편과 두 아들, 동네 주민 20여 명이 밤을 새워가며 필사적으로 불과 싸운 끝에 소와 축사를 지켜냈다. 불과 몇 걸음 안 되는 곳에 떨어진 집은 내부까지 다 탔지만 우사는 피해가 없었다. 전기도 물도 끊긴 산속에서 삽으로, 굴착기로 흙을 퍼가며 불길을 막아냈다. 이씨는 기적이라고 했다. “집이랑 창고, 소먹이는 다 탔지만 가족도, 소 한 마리도 안 다친 게 어딘지 몰라요. 얘네들 다 탔으면 어찌 살았을까 싶어요.”

최씨와 남편은 울진 부구리에서 나고 자랐다. 양가 친척 모두 이 마을에서 모여 살고 있다. 최씨 외숙모 신복순(78) 할머니는 “살다살다 이런 불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최씨 친척 반기봉(43)씨는 “불길이 잡혔는데도 아침만 되면 매캐한 냄새가 살아나서 불이 어디서 또 난 게 아닌가 싶어 계속 불안하다”고 했다.

최씨 남편 주성중(61)씨는 약한 화상을 입어 얼굴이 벌갰다. 밤새 불길에 갇혀 있다 보니 온몸에 불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사투였다”면서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주씨는 “이제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한다”면서 “화재 소식에 전국 한우협회에서 소먹이를 보내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산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13일 기준으로 주택 319채, 농축산 시설과 공장과 창고 등 모두 643개 건물이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삼림은 2만 923㏊가 화재를 당했다. 당장 갈 곳을 잃은 이재민들은 피해 복구에 막막한 상황이다. 피해 조사가 시작되고 보상 절차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건 이웃의 관심과 사랑이다. 산불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함께 불을 꺼주는 주민들, 함께 울어주는 사목자, 전국 각지에서 이름 모를 이들이 전해주는 정성은 그토록 기다렸던 단비나 다름없다. 촉촉이 젖은 땅에 새순이 돋아나기를 기다린다.

후원계좌 및 문의 : 농협 301-0307-1905-31, (재)천주교안동교구유지재단 / 054-858-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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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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