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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이 키운 과일,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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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일의 대명사 포도는 우리나라 순교자들과 관련이 깊은 과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포도를 재배해 처음 서양식 포도주, 바로 와인을 주조한 이도, 포도 과수원을 만들어 최초로 상업적으로 재배한 이도 모두 순교자들이었기 때문이다.

1795년 주님 부활 대축일,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첫 미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미사에서 쓰인 미사주는 바로 복자 윤유일(바오로)이 직접 재배해 담근 와인이었다.

윤유일은 1789년 10월 중국을 오가는 상인으로 위장하고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를 찾아갔다. 조선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고 조선교회에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윤유일의 방문에 감명받은 구베아 주교는 성직자 파견을 약속하고,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하는 데 필요한 준비 사항도 알려줬다. 이때 구베아 주교는 미사에 필요한 도구들과 포도나무 묘목, 재배법도 함께 전했다.

당시 조선에는 이미 포도가 전래됐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조선의 농서에 포도가 소개되기도 하고, 1700년대 문헌인 「양주방」(釀酒方)에는 누룩과 밥, 포도즙을 섞어 포도주를 담그는 방법도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서양식 와인을 만든 조선인은 윤유일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교회 전례규정에 따라 미사주는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포도로만 빚어야 한다. 이에 구베아 주교는 윤유일에게 포도로만 술을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1795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 봉헌을 위해 직접 주조한 와인을 봉헌한 윤유일은 같은 해 6월 28일 순교했다.

과수원을 만들어 포도를 상업적으로 처음 재배한 이는 하느님의 종 공베르 앙투안 신부다.

공베르 신부가 포도 재배를 시작한 것도 미사를 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1900년 안성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텃밭에 심은 포도나무가 잘 자라나는 것을 보고, 가난한 지역민의 자립을 위해 포도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이후 공베르 신부는 안성의 토질과 기후에 맞는 포도종자를 찾고 재배법을 익히기 위해 32차례나 프랑스를 오갔고, 안성에서 포도 재배를 시험했다.

포도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자 공베르 신부는 모국인 프랑스에서 모아온 기금으로 성당 주변 토지 50만 평을 매입했다. 공베르 신부는 이 땅을 가난한 지역민들에게 빌려주고 포도농사법을 전수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안성 포도’의 시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도농사법을 전한 공베르 신부는 1950년 7월 11일 북한군에 체포돼 납북됐고, 그해 11월 12일 중강진에서 순교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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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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