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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ㆍ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38. 함흥교구 북청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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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대목구(훗날 함흥대목구, 현 함흥교구) 본당들은 주로 동해 해변 도시에 세워졌다. 간도, 즉 현재의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거의 맞붙다시피 한 회령ㆍ계림본당만이 내륙 두만강변에 있을 뿐이다. 평안도와 달리 함경도는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리 뻗은 백두대간(白頭大幹)과 함경도를 동서로 갈라놓는 장백정간(長白正幹)이 갈라지는 험준한 산악 지역이어서 선교에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함남 함흥에서 함북 청진으로 향하는 400㎞ 기찻길 주변에도 본당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적절한 후보 지역이 함경남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한 인구 2만 명의 함남 북청이었지만, 북청 선교도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했다. 이를 테면 `복음화의 불모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이 과감하게 북청에서 선교를 한다. 함경남ㆍ북도 선교에 없어서는 안 될 선교 전진기지였기에 베네딕도회는 1935년 8월 북청에 본당을 설립하고, 그해 12월 15일 대림3주일에 성당과 사제관 봉헌식을 거행한다. 불과 4개월 만에 이뤄진 역사였다.

 벽돌로 지어진 북청성당은 종탑이 아주 독특하다. 양파 모양과 흡사한데, 본당 가구를 주로 제작하던 덕원수도원 목공 수사들이 만든 목조 종탑이다. 이는 뮌헨시에서 알프스 방향으로 40여 ㎞ 떨어진 남부독일 오버바이에른 농촌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탑 형태로, 베네딕도회 수사들이 독일 목조건축의 전통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성당은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내에서 오틸리아 성녀에게 봉헌된 첫 성당이기도 하다. 북청성당 제대에는 다고베르토 엥크 신부가 한국에 올 때 가져온 성유물이 안치되기도 했다. 성유물은 엘사스의 오틸리엔 산에 보관돼 오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당 왼쪽 건물은 비트마로 파렌코프 신부가 1936년 8월 4년제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세운 북청 해성학교다. 맨 처음 건립 당시엔 264㎡(80평) 규모로 신축됐지만, 이듬해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증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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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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