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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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척박한 땅에 핀 복음의 꽃이 더 아름답다

볼리비아 <5>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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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5>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교리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김효진 수녀 제공




얼마 전 주교님을 모시고 공부방과 본당의 날 20주년을 지냈습니다. 어린이와 청년들이 넘쳐나는 우리 본당은 젊은 본당입니다. 주교님께서는 모임에 가셨다가 직접 5시간 동안 차를 운전해 달려와 주셨습니다.

주교님 집전으로 봉헌한 본당의 날 미사 때, 우리 아이들은 엉성하지만 정성만큼은 뒤지지 않는 봉헌 예물을 드리고 교사들은 아이마라 전통춤을 선보였습니다. 신부님은 케이크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잔치에 필요한 마실 것과 고기를 준비했는데 특별히 올해는 단체 놀이도 준비했지요. 과자 따 먹기 놀이를 필사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빨랫줄에 걸려 있는 과자를 따 먹기 위해 오리걸음으로 몰려와 매달리고 의자 뺏기 놀이를 하며 함박웃음을 날립니다.

“수녀님, 왜 남의 나라에서 남의 아이들을 돌보세요?”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한 번도 이곳을 남의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 번도 우리 아이들이 남의 아이들이라고 느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슬퍼집니다. 남의 나라, 남의 아이들이라는 생각, 선을 긋는 마음이 전쟁과 가난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인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이웃에게 기쁨과 평화를 전할 때 국경도 시대도 이념도 인종도 넘어서는 하느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지요. 오늘도 아이들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이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하루를 채워갑니다.

이번 세례식 날에는 저희 공부방 아이들 22명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잔뜩 멋을 부리고 온 아이들은 세례식을 일생에 다시 없는 아주 중요한 날로 여기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세례식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집집이 목욕 시설이 없기에 이날만큼은 공중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샴푸 냄새도 풍기며 미사를 드립니다.
▲ 본당의 날 아이마라 전통춤을 선보인 신자들.




척박한 땅에도 웃음꽃은 피고

여전히 이곳은 황량하고 척박하고 춥고 배고픈 동네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배우고 익히고 변화하며 조금씩 하느님을 알고 그분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공부방에 온풍기를 틀어 주었더니 우리 아이들 “이게 뭐예요? 음악상자예요? 여기서 음악 나와요?”라고 물으며 신기해합니다. 아이들 집엔 이렇게 추운 날을 대비한 난방 시설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곳 알토 고산 지역은 아픈 아이들이 많은 동네입니다. 어릴 때 아팠는데 빨리 치료를 하지 않았거나, 알토의 추운 환경, 더러운 물, 영양 부족, 부모의 무지로 병을 키우고 살아갑니다.



가난으로 꿈을 뺏긴 아이들

우리 본당 청년 파멜라는 동네에 버스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매일 1시간 30분을 걸어 성당에 옵니다. 알토 끝자락에 있어 구멍가게 하나 없는 동네의 흙집에서 화장실도, 담도, 대문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수녀님, 꿈이 뭐예요? 저도 꿈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내복을 만들어 팔아 그날그날 먹고 사는 파멜라가 묻습니다.

청년 모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생활 나눔을 들어보면 일주일 내내 일했다는 내용뿐입니다. 본당 청년 다윗은 트럭에 음료수를 실어 나르는 노동을 하는데 주일에도 일해야 하기에 미사 참석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해야 빵을 먹을 수 있어요, 수녀님!”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생활 전선에서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이곳 볼리비아 아이마라 원주민의 결혼 풍습을 보면 우선 함께 살아 보는 동거 생활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살아 보고 계속 함께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제도지만, 결국 아이와 여자만 버려지고 남자는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공부방에 오는 조나단은 암에 걸린 아픈 엄마와 단둘이 사는데 공부방에서 저녁까지 지내다가 밤에는 엄마를 따라서 버스 안내를 합니다. 낡은 봉고차를 밤에만 빌려서 운전을 하면 조나단은 뒤에서 문을 여닫으며 버스비를 받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리실에 모이면 양 냄새가 풀풀 납니다. 집에서 양이나 개, 돼지, 닭들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교사 제니는 교리 시간에 아이들에게 수녀님들이 아주 먼 이곳까지 와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은 수녀님들이 “하느님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말해줍니다.

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십자가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당에 오는 길만 해도 골목마다 개떼들이 지키고 있고 먼지 나는 흙길을 걸어서 고산의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감내해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주님을 만나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정말 세상의 끝에 복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와 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 행사에 함께한 주교님.



모든 위로의 근원이신 하느님

요즘은 볼리비아 전역에 물이 없습니다. 100년 만의 심한 가뭄으로 마을마다 물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만년설을 자랑하던 안데스 산의 눈이 사라져 벌거숭이가 되었고 우기가 되었는데도 비가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는 가난한 지역은 이러한 기후변화에 제일 먼저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척박하고 가난한 땅, 가진 것 없는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은 더욱 단순하게 선포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메말라 있을수록 단비의 고마움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 말입니다.

선교지에서의 삶은 시간이 멈춘 듯 매우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새로울 것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내면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합니다. 이 땅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그분의 현존이 사람들 안에서 드러나는 기적을 보고 느끼며 그렇게 하느님을 지속해서 만나고 그분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오늘도 진정한 선교사가 되는 법을 배워 갑니다.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선교의 길에서 터득한 가장 안전한 길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분으로서 우리가 어떤 환난을 겪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2코린 1,3-5).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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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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