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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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성탄 선물로 받은 새 신발 아까워서 못 신어요

볼리비아 <7·끝>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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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7·끝>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미사에 일찍 온 아이들과 함께.



교리실 6개와 복도에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데 산소가 부족한 고산에서 페인트칠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마침 지나가던 리셋 엄마가 “수녀님, 이걸 왜 혼자 칠하세요?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천사의 음성을 듣는 듯했습니다. 예쁘게 꼼꼼히 칠하고 싶었던 제 바람은 포기해야 했지만 모두의 도움으로 페인트칠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혼자 하려는 제게 이들은 함께 해나가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내가 부족할수록 더 많은 이들을 보내 주신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저의 약함과 한계를 통해 부르심을 완성하시고 하늘나라는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알게 해주십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안겨 준 신발.




한국인에게 받은 온정 갚아

리셋 엄마는 13살 때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서 소개받은 주인에게 모든 서류를 맡기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3년 동안 때리고 감금하며 착취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한국인 도움으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볼리비아에 사는 한국인의 집에 들어가 7년 동안 아주 재밌게 일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큰 아이가 저희 공부방에 다닙니다.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있던 리셋 엄마는 한국인인 저희를 만나 기쁘다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줍니다.

그녀는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해주고 돌봐 주었던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그 고마움을 우리에게 갚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이 베푼 온정의 고마움을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표현하는 리셋 엄마와 함께하며 하느님께서는 참 별의별 묘한 방법으로 우리가 오기 전부터 손수 선교를 준비하고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나눔이나 온정은 민들레 꽃씨 같아서 계속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퍼져가는 것을 봅니다.

▲ 아이들에게 새 신발을 신겨보고 있는 모습.


애타게 새 신발을 기다렸지만

공부방에 오는 우리 아이들이 벗어 놓은 신발을 유심히 살펴보니 터지고 갈라지고 늘어나 있고 안팎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가죽 샌들을 신고 있는 제 발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단순히 아껴 쓰는 가난의 실천이 아니라 아낄 것도 없는 절벽 끝의 가난을 살면서도 우리 아이들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정작 우리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때마침 옆 동네 스페인 수사님이 찾아오셔서 문서 한 장을 주시며 교구 사회복지회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신발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미에서 신발 9000켤레가 오는데 아이들의 이름과 연령, 성별, 발 치수를 적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신발 상태가 좋지 않아 성탄 때 신발을 선물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 너무나 기뻐서 저는 나는 듯이 가서 무사히 신발을 신청했습니다. 신발은 벌써 도착했는데 분류를 하려면 2주가 걸린다며 돌아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왔지요.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수녀님, 신발은 언제 와요…?” 하고 묻는데 신발을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에 빨리 좀 달라고 한 번 더 재촉하며 하루하루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드디어 옆 본당은 북미에서 보내 준 신발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플라스틱 슬리퍼가 왔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발을 신게 되었다며 기뻐하던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니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을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2주 동안 사인을 받고 아이들의 발 치수를 재며 기다리고 기다려서 접수했는데 플라스틱 슬리퍼라니 튼튼한 운동화나 좋은 구두를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줄까 싶어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한국의 신부님께서 기꺼이 우리 아이들에게 튼튼하고 좋은 신발 60켤레를 모두 살 수 있도록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곳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신 한국의 신부님께 감사와 존경을 드리며 다시 한 번 이 글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날로 라파스에서 제일 큰 신발 가게에 갔습니다.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의 신발을 함께 고르면서 우리 교사들도 저녁까지 피곤했을 텐데도 “Bien Cansadito~”(기분 좋은 피곤함)이라며 계속 고르는데, 그만 고르고 내일 다시 오자며 말리느라고 혼이 났지요.

드디어 새 신발을 받는 날, 밖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우리 아이들이 새벽부터 성당 철문에 매달려서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명 한 명 신발을 신겨보니 신기하게도 다 잘 어울립니다. 치수가 조금 크거나 작은 아이들 신발은 맞는 것으로 바꾸기 위해 내일 오라고 해도 그 자리에서 울며 바꿔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바람에 우리는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라파스까지 다시 가서 신발을 바꿔 오는 소동을 벌였지요.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고 모두가 새 신발을 가슴에 안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신어 본 우리 아이들은 신발을 다시 상자에 고이 넣고는 특별한 날에만 신을 거라며 아무도 신고 가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는 함께하는 공동체

나눔은 이렇게 우리 아이들 얼굴에 환한 등불이 되어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고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신발을 통해 우리 아이들 마음에 작은 등불이 켜지고 기다림의 기쁨을 알게 해준 두고두고 고마운 성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요즘은 공부방의 유치부 아이들을 위해 지난 5년 동안 수녀원으로 쓰던 집을 유치원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치부 아이들은 공부방의 큰 아이들에게 치여 좁은 교실에서 생활하며 야외 활동 공간도 부족했는데 유치부만의 아담하고 예쁜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짧은 방학 동안 마무리를 해야 하기에 방학에 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선교지 이야기를 쓰다 보니 지난 5년의 모든 시간에 함께해 주시며 돌보아주셨던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한국의 모든 신자에게 성탄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강생하신 주님과 함께 기쁜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육화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과 함께 날마다 사랑을 실천하며 새해에는 희망이 가득한 좋은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커다란 권력과 힘보다도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이 있고 우리 어린이들이 헤쳐나갈 다음 세상은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선교지 나눔을 통해서 이곳 볼리비아 알토 선교지를 응원해 주시고 사랑을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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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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