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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라는 성령의 열매로 이루는 사회적 우애

강우일 주교가 풀어낸새 회칙 「모든 형제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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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교회가 빈민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이고 생필품과 마스크 등을 전달하며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힘쓰고 있다. 【CNS 자료 사진】



6장 사회의 대화와 우정



누군가를 만나고 이웃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려면 먼저 대화가 오가야 한다. 불화와 갈등은 쉽게 뉴스의 소재가 되지만, 용기와 끈기가 필요한 대화는 좀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대화야말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현실에서 도피하는 이들은 자신의 좁은 틀 안에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파괴적 폭력으로 대응해버린다. 그러나 이기적 무관심과 폭력적인 대결 사이에는 항상 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세대 간의 대화, 종족 간의 대화가 열려있다. 사회의 각 계층 문화, 즉 대학문화, 대중문화, 젊은이 문화, 예술 문화, 기술 문화, 경제 문화, 가족 문화, 미디어 문화들 사이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는 크게 번성한다.

인생은 그 안에 대결적 요소를 많이 품고 있기에 만남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은 서로 다른 모양이나 특성이 하나로 모여 있는 다면체다. 타인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은 없다. 어떤 사람도 소모품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요소들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통합의 여정이 있어야 진실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는 순수하고 흠 없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도 무엇인가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넘어서서 만남을 이루어 가도록 성숙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도 그들이 우리와 다르게, 그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권리를 인정하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우리와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는 능력이 우리의 문화로 정착되면 사회적 계약이 형성된다.

사회의 일부 계층이 가난한 이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의 모든 부와 권리를 독점하고 수탈해버린다면, 머지않아 그 부작용이 폭력적 형태를 띠고 나타날 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면 그냥 고상한 이상으로 남을 것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정계, 재계, 학계의 유력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사회적 만남은 대다수 사람이 공유하는 대중적 문화의 틀 안에서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회적 만남은 공존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세계관과 문화와 생활양식을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문화적 계약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토착민들의 경우 발전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그들이 생각하는 발전이란 선진국 국민들의 통념과는 다른 ‘인간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토착민문화에 대한 불관용과 존중심의 부족은 일종의 폭력이다. 우리 문화와 아주 다른 문화, 특히 가난한 이들의 문화를 무시한다면 우리 안에 참되고 깊이 있고 영속적인 변화를 이루어갈 수 없다.

소비주의적 개인주의는 세상에 많은 불의를 쌓아왔다. 타인의 존재를 우리 자신의 평화에 방해되는 요소로 인식하게 만들어, 다른 이들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만 바라보게 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특히 위기와 재앙과 시련이 닥쳐왔을 때,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친절’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갈라 5,22)

친절이란 무례하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뒷받침하는 태도이다. 고민과 두려움에 짓눌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는 이들이 갖는 자세다. 적의와 갈등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파괴한 곳에 새로운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친절이다.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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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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