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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성자’ 에밀 카폰 신부 유해 70여 년 만에 확인

전쟁 당시 병사들 위해 헌신… 하와이 국립묘지 신원불명 6·25전사자 유해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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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카폰 신부가 지프차에 담요를 덮어 만든 임시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6ㆍ25전쟁 당시 평안북도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한국전쟁의 성자’로 불리는 미국인 군종 사제 에밀 카폰(1916~1951) 신부의 유해가 70여 년 만에 확인됐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현지 시각으로 5일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매장돼 있던 약 700명의 신원불명 6ㆍ25전쟁 전사자들에 대한 치아 기록과 DNA 대조 등을 통해 카폰 신부의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1916년 태어난 카폰 신부는 1940년 사제품을 받았고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파견됐다. 그해 11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중공군에 포위됐고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포로로 잡힐 것을 각오하고 부상자들과 남았다. 카폰 신부는 지프차에 담요를 덮어 만든 임시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병사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임종 기도를 바쳤다. 또 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키는 등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헌신했다.

포로가 된 카폰 신부는 평안북도 벽동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수용소에서도 직원에게 부탁해 자신의 시계를 담요로 바꾼 후 그 담요를 잘라 동료들에게 양말을 만들어주는 등 선행을 이어갔다. 하지만 열악한 수용소 환경으로 인해 폐렴에 걸렸고 1951년 5월 숨졌다. 카폰 신부는 “나를 위해 울지 않아도 된다.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는 것이며 도착하면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으로 1954년 그의 희생을 담은 책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가 발간됐다. 한국에서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이 이를 번역해 출간했다. 에밀 카폰 신부는 1993년 교황청에 의해 ‘하느님의 종’이 됐다. ‘하느님의 종’은 평소 성덕이 뛰어난 이가 선종해 교황청 시성성에 시성 청원이 이뤄진 경우 그 후보자를 부르는 칭호다. 미 군종대교구와 카폰 신부의 출생지인 캔자스주 위치토교구 등이 그의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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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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