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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바보 같은 여인 / 안봉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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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마찬가지로 올 사순 시기에도 세상을 등지고 외로이 떠난 이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이들, 늙고 병들어 홀로 사는 이들을 위해 날마다 새벽 미사를 봉헌했다. 늙고 병들어 홀로 사는 이들이 연락을 할 때면 곧장 달려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가 일주일 안팎으로 전화벨과 함께 ‘무연고 어르신께서 하늘나라로 편안히 떠나셨다’라는 소식이 전해지면 마음이 울적해졌다.

지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며칠 앞두고도 전화벨이 연일 울려댔다. 어김없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부님! 오늘 어르신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위에는 코로나19와는 별개로 말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삶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줄 뿐만 아니라 신앙인들이 게으른 삶을 살지 않고 좋은 일을 하도록 다그쳐준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중략)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여러분은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하십시오.”(2테살 3,9)

10여 년 전 시골 본당으로 부임했을 때 만난 그녀! 시내에 살면서 시골에 있는 시설로 출퇴근하는 그녀의 삶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여인 마냥 참으로 어색하게 보였다. 어려운 일은 피하고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녀는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니 참으로 바보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녀는 오갈 데 없는 무연고 어르신들을 모시려고 했던 한 교구 사제가 전 재산을 털어 연 사회복지시설의 원장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복지법에 맞춰 시설을 운영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도 각종 행정 서류 처리에 무척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데, 사회복지 전문가도 아니면서 가정의 일과 시설의 일을 동시에 묵묵히 수행하는 그녀는 어쩌면 ‘주님의 종’처럼 기구한 운명에 자신을 내맡겼는지도 모른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 50,5-6)

그녀는 전임 원장이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교구로부터 잠시 몇 달만 시설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저 교회와 시설을 연 원로 신부님의 뜻에 따라 봉사한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시설을 맡았단다. 하지만 원장직을 맡으면서 엄청난 후회를 했단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는 엄마로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이 커갔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시설의 환경은 그녀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없이 후원자와 어르신들의 수급비로 운영되던 비인가 조건부 시설이기에 시설 운영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몇몇 수녀회에 운영을 맡겨 보려고 부탁을 했지만 이곳을 살펴본 수녀회마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단다.

그러나 그녀는 낙담하지 않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시설을 차분하게 운영해갔다. 낮에는 어르신들을 돌보고 6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회복지 분야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공부했단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오늘도 하느님 품으로 떠나신 어르신의 시신을 닦아 드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바보 같은 그녀의 삶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방향지시등이 아닐까.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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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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