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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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성체등

박명순(드보라, 제주교구 신창본당 조수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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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다.” 그분은 늘 그렇게 얘기하며 그곳에 계셨다.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어둠이 내리는 창문을 응시하며, 제대로 된 눈맞춤 한 번 없이 오갔던 바로 그 자리에 작은 불빛으로, 그렇게 늘 그곳에 계셨다.

오늘도 와르르 쏟아져 나가는 발걸음 속에서, 유난히 떨림이 이는 어느 발자국 소리를 더듬어 찾으시는지, 다시 들어와 앉은 텅 빈 좌석 위로 불빛 한 줄기가 선을 긋는다.

몇 년 전 몽골에서의 어느 토요일, 특별한 일이 없기에 쓰레기 집하장 무료 배식 봉사를 함께 나섰다. 흙먼지 바람이 이는 자동차 소리에, 표정없는 얼굴들이 그들의 삶 터 여기저기에서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 주위로 모여들었다.

뜨거운 김이 솟구치는 큰 들통에서 듬뿍듬뿍 음식을 퍼 담아주는 듬직한 청년이 있고, 말없이 수저를 건네주는 내 흰 손이 있었다. 열심히 산 흔적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도 짠한 굵은 손마디에 때 묻은 손등.

고맙다며 빈 식기를 돌려주고 돌아서는 그들의 등 뒤로, 작은 성체등이 하나씩 ‘나 여기 있다’ 불을 밝힌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먼지 뒤집어쓴 머리를 감는데, 또 하나의 성체등이 나를 바라본다.

‘나 여기 있다. 여기에 있다. 헐벗고 굶주린 네 영혼 속, 흙먼지 털고 있는 여기에 내가 있다.’

채워주고 또 채워줘도 배부른 줄 모르는 굶주린 영혼 속으로, 오늘도 빵이 되어 오시는 당신을 두고, 붉은 성체등만 바라보며 방황하고 있는 여기가 어딘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주님. 당신의 그 행하심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독자마당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지 5매 분량입니다.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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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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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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