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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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시대 유감 ‘우리 함께’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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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어릴 적 고향 집 대문 앞에 ‘나뭇간’이라고 불리던 헛간이 있었다. 함석지붕에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엮은 허름한 창고였다. 어느 날 이곳에 오갈 데 없는 세 식구의 가족이 들어왔다. 거적을 깔고 헌 이불을 덮으며 한동안 기거한 뒤 새 보금자리로 떠났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지으면 으레 막내인 나를 불렀다. 한 그릇씩 퍼서 쟁반에 담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없어도 그냥 놓고 와라.” 아침밥을 얻기 위해 동냥하러 나가는 모습을 가끔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대한민국은 배가 고팠다.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새벽종이 울리면 모두 일어나 땅을 일구고 기계를 돌렸다. 고단함을 인내하고 불평불만도 꾹꾹 눌러 참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도 “잘살아보세” 였다.

그런데 살아남아야만 하는 그 경쟁의 시절에도 “나 홀로 잘살아보세”는 아니었다. “함께 잘살아보세”였다. 아버지는 도회지로 나가 설움과 핍박을 견디며 돈을 벌어 고향에 송금하고 집안의 맏언니는 학업을 포기하며 공장 노동자로 동생들의 학자금을 마련했다. 방을 여러 개로 나눠 집 없는 친지와 이웃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며 함께 살았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모두가 ‘우리’였다. 나의 배고픔이 너의 배고픔이고 가진 것이 있든 없든 부모의 꿈과 희망은 한결같았다. 자식들에게는 이 구질구질한 배고픔의 세상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며 그 모진 세월을 이겨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라는 문화가 사라지고 오직 ‘나만’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가 아닌 ‘우리’가 생존의 절대적인 가치임을 깨닫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해 말 경기도 성남에 있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 「안나의 집」에서 있었던 ‘벤츠 급식’ 사건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성당 앞에 벤츠 승용차를 타고 온 두 여성이 태연히 노숙인 사이에 끼어들어 줄을 서고 도시락을 받으려 했다. 아파트 분양 서류를 받고 도시락을 받으러 오겠다고 예약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료인데 왜 제가 오면 안 되나요.” 그들만을 탓해야 할까?

그럼에도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수백 명에게 밥을 먹이는 하루하루를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기적은 과연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새로운 가치일까? 잃어버린 ‘우리 함께’라는 가치가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라는 가치는 거창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밥 한 그릇, 옷가지 하나라도 나누고 작은 위로와 관심의 말 한마디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를 잃어버리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 출신이 음식재료를 들고 찾아오고 은행계좌 하나 없이 평생을 가난과 싸운 노인이 평생 모은 금붙이를 기부했다. 고사리손은 저금통을 들고 급식소를 찾는다.

가수 조성모가 부른 ‘가시나무새’의 노랫말을 떠올려 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우리 안에 나를 찾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밥이든 돈이든 가진 것을 그냥 습관처럼 나누는 것이다. 종교, 이념, 체면의 벽을 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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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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