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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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5월의 향기 ‘가족 냄새’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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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이 되면 그날이 떠오른다. 1979년 5월 8일,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공경을 표시하는 그 날, 나는 부모의 관심과 배려 속에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신작로(新作路)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버스는 마치 흑백 TV에서 보던 ‘마징가Z’에 올라탄 기분이랄까? 차창 밖에 펼쳐진 서울은 난생처음 보는 미지의 신세계였다. 네모난 성냥갑처럼 줄 맞춰 서 있는 고층의 아파트엔 사람이 살고 있었고 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건물의 지붕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전학을 온 서울 생활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사투리를 쓰는 ‘촌놈’이라는 서울 친구들의 조롱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그 자체가 끊임없는 이주(移住)와 반전(反轉)의 연속극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났지만, 인간은 피부색도 다르고 살아가는 터전도 삶의 양식도 문화도 모두 다르다. ‘타향살이’인 이주의 삶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전쟁과 재난, 정치적 박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뒤 돌아갈 길이 막혀 ‘실향민’이 된 이주민도 있고 더 나은 삶의 희망을 안고 국내외 ‘기회의 땅’으로 향하는 이주민도 있다.

한국 배우가 한국말을 하는 미국 영화 ‘미나리’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울렸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 아칸소주(州)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애환을 담은 영화가 오스카(아카데미)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 4월 25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미나리’는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 실화를 담은 영화이다. 가족을 위해 농장을 시작한 딸 부부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할머니는 가방 가득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과 미나리 씨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다. 영화는 가족의 새로운 터전인 땅(농장)에서 시작해 땅(미나리밭)에서 끝난다. 영화 앞부분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잡초가 무성한 땅의 흙을 손에 들고 “미국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할머니가 심어 둔 미나리가 어느새 잘 자란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께서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

이주민은 미나리처럼 땅(터전)이 비옥하든 척박하든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으로 어디에서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좌절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보이지만 쉽게 넘을 수 없는 이방인의 선(線)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계와 차별, 멸시와 배척의 시선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이주민 또는 이방인이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주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면 냄새난다고 가까이 가기를 싫어했던 할머니의 품에서 손주가 곤히 잠들고 심장병이 나아진다. 돈만을 쫓는 아버지로 인한 가족 해체의 위기 상황에서 비록 할머니의 실수로 농작물 저장소는 불에 탔지만,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하나가 된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고 있지만, 일자리와 안전,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경계와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차별과 배척으로 점점 팍팍해 지고 있다. 고단하고 서글픈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고향의 흙냄새, 어머니의 품속 향기가 지독히도 그리운 계절이다. 가정의 달이자 성모성월인 5월,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 가족은 지금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제가 가족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과연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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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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