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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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삐라와 인권 /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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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스프 네트워크’(Wasp Network, 2019)는 1990년대 쿠바 본토를 공격하는 테러를 막기 위해 미국 내에서 활동했던 쿠바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에는 쿠바를 ‘위장탈출’한 조종사가 등장하는데, ‘반(反)카스트로’ 단체의 비행기를 조종하게 된 그는 바다를 건너는 탈쿠바인을 구조하면서, 아바나 상공까지 날아가 쿠바 정권을 비난하는 삐라를 뿌린다.

영화에 등장했던 삐라 살포는 실제로 미-쿠바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6년 2월, 쿠바 탈주민들에 의해 결성된 ‘구호를 위한 형제단’(Brothers to the Rescue) 소속 비행기가 쿠바 영공에서 카스트로 정권을 비난하는 삐라를 살포하다가 쿠바 공군기에 의해 격추되고 만다. 민간 항공기가 격추된 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는데, 이렇게 한층 더 악화된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개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쿠바 주민의 가난한 삶도 더 오래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말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국내외 정치인들의 비판이 일고 있는데, 이들은 해당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북한의 인권 증진에 역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삐라를 통해서 북한 주민들이 ‘각성’돼야만 그들의 인권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정권을 변화(붕괴)시켜야 한다는 대북강경론에는 북한 정권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깔려 있다. 북한 당국과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평화통일’이나 ‘평화공존’을 실제로는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전쟁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그동안 남북미 간에는 수많은 협상과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극단적인 대북강경론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정권과의 대화는 그 자체가 ‘악마적’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가 아니었을까?

상대방을 저열한 언어로 공격하는 ‘삐라’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오히려 북한의 경직된 체제를 지속한 힘은 정권이 오랜 세월 외부 세계와 맺고 있는 적대적 관계다. 북한 당국이 크게 반발했던 ‘2014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보고서’조차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궁극적으로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북한 주민의 삶이,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인권이 나아지길 바란다면 아직 종전하지 못한 한국전쟁이 끝나고 당사국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수립돼야 한다. 하느님의 약속을 담고 있는 진정한 평화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자.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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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1-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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