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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생명의 먹을거리 ‘겨울 노지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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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주교구 음성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야고버’라는 젊은 농민을 알고 있다.

그는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평생 사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살겠다고 작정을 했단다. 이제 그 젊은 농민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의 아버지가 목숨처럼 지키려 하는 가톨릭농민회 정신을 아들이 자연스럽게 대물림을 하게 됐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 부모들은 얼마나 이런 대물림의 삶을 원했을까.

그 아버지도 남보다 꼭 술 한 잔을 더 하셨다. 아들 ‘야고버’ 자랑하시느라. 그래서 ‘야고버’는 그 부모님을 아는 모든 이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 아들이 유기농 땅에서 기른 시금치 한 박스를 택배로 받았다. 판로가 없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음성이면 넘어지면 이마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 있어 밭에 가서 뽑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었겠지만, 코로나 19는 모든 일의 ‘때문에’가 된다. 아마 얼마 전까지만 됐어도 주변 몇 사람 데리고 가서 반나절이면 해결했을 일을 택배비와 중간 수고를 들여 받게 된 것이다.

시금치 박스를 열어놓고 나는 젤 먼저 코끝이 시려웠다. 야고버와 그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금치의 밑둥을 보니 분홍색 선명한 것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듯 보였다. 새벽에 작업을 해 바로 택배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녹색 시금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일단 내 몸이 춤추듯 좋아라한다. 농민의 수고와 감사함은 사람의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간 감사드리고 싶었던 지인들께 시금치를 보내드렸다. 신문지로 봉투를 만들어 한 봉지씩 포장했고, 시금치 맛나게 먹는 방법을 적은 종이와 함께 멸치와 된장 육수를 조금씩 넣었다. 그 분들이 시금치를 또 찾게 되기를 바라는 내 마음도 함께 전해드렸다.

당신 손으로 끼니를 해결하시는 우리 본당 신부님께는 시금치 한 봉지와 된장 육수, 살짝 데친 시금치를 매실효소와 들기름을 섞은 된장과 함께 넣어 김에 싸서 바로 드실 수 있게 갖다 드렸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동창 신부들한테도 알리게 해주세요”라며 감사해하셨다.

교회는 생명을 양산하는 곳이다.



이순일(마리아·의정부교구 마석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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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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