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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동기와 과정이 결과를 만든다(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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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소식이 날아왔다. 이를 ‘낭보’라고 한다. 영어로는 굿 뉴스인 것이다. 우리는 평소 좋은 소식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아프고 슬프고 끔찍하고 충분히 분노할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도 단비가 내리고 물길이 흐르기에 풀과 꽃과 나무, 생명이 살아가듯 우리의 삶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아름다움이 흐르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낭보는 우리가 브라운관(요즘 TV는 브라운관을 쓰지 않지만, 윤여정씨가 TBS 공채 3기 탤런트로 채용된 시기가 1966년이니 오랜만에 써보도록 하자),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서 익숙히 보아온 배우 윤여정씨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윤여정씨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도 방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마치 우리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처럼 익숙하다. 말투, 표정, 몸짓까지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위에서 영어로 세계인을 웃음 짓게 하는 멋진 수상 소감을 할 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낯설기도 했다. 마치 우리 엄마나 우리 할머니가 갑자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순간 같았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그녀는 늘 배우였던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지금은 ‘천직’이라고 부르는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 이화여고를 나와 한양대 국문과에 들어간 윤여정은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데 김동건 아나운서를 돕는 역할이었다. 김 아나운서는 그녀의 끼를 알아보고 탤런트 공채에 응시해보라 권했고, 정말 탤런트가 된 그녀는 학업까지 중단하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영화계 데뷔는 기인 감독 김기영이 기괴한 작품인 ‘화녀’에 윤여정을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시작된다. 김기영 감독은 당시 서구형 미인을 마다하고 개성 있는 그녀를 주목했다.
 

이후 윤여정은 유명 가수와 미국에서 보낸 13년 결혼생활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배우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내막을 알고 보면 그녀가 자신의 직업 세계에서 흥행작이건 저예산영화건 드라마건 예능이건 따지지 않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촬영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생계형, 생활형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소감에서도 두 아들이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한 덕분에 이 상을 타게 됐노라 웃으며 말했다. 과거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출연 결정의 이유를 물었다. 윤여정은 담담하게 집 인테리어를 바꿔야 할 때 출연 제의가 왔노라 답했다. 돈이 필요할 때 작품을 하자는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반가웠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영화를 찍는 것이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노동하는 것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장인이라고 한다. 또는 달인이라고 한다. 결과는 따라오는 것으로 알고, 동기와 과정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다 내려놓고 일하는 느낌을 준다. 더는 허망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녀는 수상 소감 말미에 1971년 자신을 영화에 데뷔시켜준 고 김기영 감독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 대목이 가슴 짠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달인, 숨어있는 장인이 우리 주변 여러 분야에 많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찾아내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묘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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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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